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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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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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연합국 미국 영국 자유 프랑스[1] 소비에트연방 중화민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네덜란드 등 |
추축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비시 프랑스[2] 핀란드 헝가리 왕국 루마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타이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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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오시프 스탈린 윈스턴 처칠 장제스 샤를 드골 |
아돌프 히틀러 도조 히데키 베니토 무솔리니 필리프 페탱 미클로시 호르티 이온 안토네스쿠 피푼 송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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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상황 | |||
군인 사망 14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3600만 명 이상 총 5000만 명 이상 사망 |
군인 사망 8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400만 명 이상 총 1200만 명 이상 사망 |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戰)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8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였다고 본다. 때로는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침략, 1939년 3월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또한 한국과 중국의 일부 학계에서 2차 대전이 일어난 해를 1939년으로 하는 것은 서양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때는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출처 필요].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미국의 원자 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이 결과로 한국이 독립하였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4천만 명에 달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시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1944년 여자정신대근무령을 통해 조선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여성을 종군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 ‘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하였다. 또한 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적으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재일 조선인 포함),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으며, 영국과 미국의 공군은 드레스덴과 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의 피해는 극히 심하였다.
전쟁은 크게 유럽 전선과 중일전쟁·태평양 전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럽 전선만을 얘기할 경우 히틀러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목차 |
[편집] 경과
[편집] 유럽 전선
유럽 전선에서 초기에 독일은 전격전의 입안으로 초기에 백색 작전, 황색 작전, 낫베기 작전, 베저 작전을 성공시켜,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영국 공격을 감행하려 했던 바다사자 작전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함으로써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후 나치 독일은 동쪽으로 관심을 돌려 1941년 이탈리아가 점령하지 못한 그리스와 발칸 반도를 먼저 점령하고, 헝가리와 루마니아들를 동맹국으로 삼은 다음, 소련에 대한바바로사 작전을 발동하여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승승장구하여 모스크바 직전까지 도달했으나, 거기가 한계였고, 1942년에는 코카서스와 카스피 해 연안의 석유 지원 확보를 위해 남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1942년 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6군이 소련군의 천왕성 작전에 밀려 전멸한 뒤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다시 소련군에 패하면서 기울어 밀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부족한 병력과 병참 지원에도 불구하고 에르빈 롬멜 장군과 북아프리카 군단(DAK)이 선전하였으나, 1943년 초 튀니지에서 항복하면서 완전히 축출되었고, 이후 연합군은 시실리 및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본토로 연합군이 상륙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니토 무솔리니을 실각시키고 연합군에 항복한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독일은 플란데 작전을 발동, 이탈리아군을 무장 해제 시키고 베니토 무솔리니을 복귀시킨 후, 사실상 점령군 행세를 하며 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이 이탈리아 전선은 유례없는 산악전으로 진행되면서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한편 독일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1942년부터 소위 대서양 방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수많은 외국 포로들이 동원되었으며 프랑스로부터 네덜란드까지 연결되었다.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의 디에프 기습 공격에서 얻은 전훈을 참고하여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으로 연합군은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서부에서는 흔히 벌지 대전투로 불리는 라인강 수비 작전으로, 전세의 재역전을 노렸으나, 양측에서 압박해오는 동서 연합군을 막을 힘은 없었다. 결국 5월 1일, 소련군에 의해 베를린이 점령당하고, 엘베 강의 토르가우에서 미군과 소련군이 만나서 악수하는 와중에 1945년 5월 7일 서부 연합군에 항복하고, 5월 8일에는 동부의 소련군에 항복하였다.
[편집] 아시아와 태평양 전선
태평양전선은 애초에 일본이 중국과의 1937년에 있었던 중일 전쟁이 진행 중에 있었고 전쟁 기간 중에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는 등 교전이 있었다. 1941년 12월 8일 미국 하와이 주의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전쟁은 크게 확대되었고, 일본군의 점령지는 뉴기니 섬과 인도 동부 국경지대에 이르기까지 확대 되었다. 일본은 둘리틀 공습(1942.4.18)으로 주요 도시가 최초로 미 공군의 공습을 받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제해권과 제공권에 큰 공백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어진 육전 및, 미얀마에서 벌어진 임팔 작전에서도 대패하게 된다. 일본은 한반도의 제주도와 일본 열도의 규슈, 오키나와 섬을 최후의 방어전장으로 설정하고 항전하려했으나, 미국의 일본본토공습으로 방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45년 3월 10일, 도쿄대공습으로 15만이 넘는 일본인이 목숨을 잃었다(재일 조선인 포함). 1945년 6월 23일, 수개월간 참혹한 전투가 벌어지며 일본이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오키나와가 미군에 함락당하였으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공격을 당하면서 연합군의 본토 상륙이 개시되기 전인 1945년 8월 15일에 항복하였다.
[편집] 소련의 태평양 전선 참전
소련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지는 않았으며, 일본의 점령하고 있던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일본 세력을 축출하였다. 또한 러일 전쟁의 패배로 러시아가 일본에 할양하였던 사할린 섬 남부와 쿠릴 열도를 탈환하였다.
소련의 태평양 전선 참전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소련 지도부의 사적인 야욕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은 이 전쟁 중, 회담을 통해서 스탈린에게 태평양 전선에 참전할 것을 독려하였고, 이는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인 희생자를 줄이면서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전략 때문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을 비롯한 중앙 유럽의 문제가 세계대전으로 비화되는 두 차례의 경험을 통해, 독일을 고립시키고 소련과 연합하여 세계질서를 유지해 나가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1950년대 초 마녀사냥식으로 공산주의자를 색출한 매카시 선풍이 미국을 휩쓸었을 때, 과거 루스벨트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많은 관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 때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도 조사 대상이 되었다.
외교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은 일본의 전권대사였던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가 1945년 9월 2일 미국 측의 맥아더 원수에 대해 요코하마 근해에 정박한 미 해군 군함 미주리 호의 선상에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완전히 끝이 났다.
[편집] 2차 대전 관련 주요 학살 사건
- 난징 대학살 :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 사건의 실체 및 학살당한 숫자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 유대인 대학살 : 600만 명이 현재 일반적인 설이나, 다른 의견도 있다. 자세한 것은 유대인 대학살 참조
- 카틴 숲의 학살 : 소련군이 폴란드 군 장교단을 카틴 숲에서 학살한 사건. 현재 이 사건은 러시아와 폴란드간의 갈등을 빚고 있다.
- 말메디 포로 학살 사건 : 전쟁 말기 벨기에 아르덴느숲의 바스통에서 무장친위대가 미군 포로 수십 명을 학살했다는 사건. 그러나 전후 조사 과정에서 과장된 것으로 드러남.
- 독일군 포로 학살 : 종전 후, 연합군은 포로로 잡힌 독일군을 강제로 국가 재건등과 같은 중노동에 투입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프랑스, 소련의 경우),일부러 의약품과 음식의 제공을 줄여 굶겨죽이는 만행(蠻行)을 저질렀다(미국의 경우).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원칙에 의해 쓰여지기에 그 어느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편집] 연표
[편집] 1939년
- 9월 1일 - 독일, 폴란드를 침공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그 순간이다.
- 9월 3일 -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선전 포고하다.
- 9월 17일 - 소련군, 폴란드에 침입.
- 9월 27일 - 독일, 바르샤바를 점령하다. 그리고, 항전에 참여한 폴란드인을 체포하다.
- 9월 28일 - 독일-소련 경계 설정, 우호 조약으로 폴란드 분할하다. 소련, 핀란드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 11월 30일 - 소련, 핀란드에 침입하다(겨울전쟁). 연합군이 핀란드를 지원함(스웨덴은 무기를 대여했음. 그러나 다시 중립으로 회귀).
[편집] 1940년
- 3월 12일 - 겨울전쟁 종료
- 4월 9일 - 독일, 덴마크를 점령하고, 노르웨이 침략(베저 작전).
- 5월 10일 - 영국, 윈스턴 처칠 거국내각 수립.
- 5월 11일 - 독일, 프랑스 전역공격 개시. 베네룩스 공격 개시. 룩셈부르크 항복
- 5월 15일 - 네덜란드, 독일에 항복.
- 5월 28일 - 벨기에, 독일에 항복.
- 6월 4일 - 영국-프랑스군, 됭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
- 6월 10일 -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이탈리아, 프랑스에 선전 포고.
- 6월 14일 - 독일군, 파리 입성.
- 6월 22일 - 프랑스, 독일에 항복.
- 7월 11일 - 프랑스에 비시 정권이 수립됨.
- 7월 19일 - 미국 해군대확장법 제정.
- 8월 1일 - 히틀러, 영국 침략 준비 명령(바다사자 작전). 영국 항공전 개시
- 8월 6일 - 소련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불법 점령하다. 이는 발트 3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된다.
- 9월 27일 -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에 조인.
- 11월 20일 - 헝가리, 삼국동맹에 가입.
- 12월 18일 - 히틀러, 바르바로사 작전 준비 명령.
[편집] 1941년
- 1월 6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4개의 자유" 연설
- 3월 11일 - 미국, 랜드리스 제정.
- 4월 6일 - 독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 4월 17일 - 유고슬라비아, 독일에 항복.
- 4월 17일 - 독일, 이탈리아가 실패했던 그리스에 침공.
- 4월 23일 - 그리스, 독일에 항복. 독일이 크레타 섬을 탈취함.
- 5월 5일 - 에티오피아, 이탈리아의 불법 점령(1936~1941)으로부터 해방되다.
- 5월 6일: 스탈린,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취임.
- 5월 10일 - 독일 부총통 루돌프 헤스, 영국과 화평을 추진하기 위해 영국으로 비행기를 직접 몰고 날아 가지만, 영국으로부터 전쟁 포로 취급을 당하고 체포됨.
- 6월 22일 - 독일, 사상최대의 원정군으로 소련을 기습공격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모스크바 공략은 추위 때문에 실패함.
- 8월 12일 - 미국과 영국 정상회담, 대서양 헌장 발표.
- 9월 24일 - 소련 등 15개국, 지지 표명.
- 12월 7일 - 소련, 독일에 반격. 일본, 진주만 공습.
- 12월 9일 - 중화민국, 독일과 이탈리아에 선전포고.
- 12월 11일 -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에 전쟁 선포.
- 12월 25일 - 일본, 영국령 홍콩 점령.
[편집] 1942년
- 1월 1일 - 연합국 26개국, 워싱턴에서 공동 선언 조인.
- 1월 20일 - 독일, 반제회의에서 유대인을 학살하기로 결정.
- 2월 15일 - 일본, 싱가포르를 점령하여 '쇼난(昭南)'으로 개명하다.
- 4월 18일 - 미 육군항공대, 일본 본토를 기습 · 폭격하는 이른바 둘리틀 공습을 감행.
- 6월 5일 - 일본,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 이 해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잡았다.
- 6월 30일 - 에르빈 롬멜 지휘 하에 독일-이탈리아군이 엘 알라메인에 도착.
- 8월 16일 - 미.영.소 지도자들, 모스크바 회담. 소련, 제2 전선 요구.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 (토오치 작전) 결정.
- 9월 13일 - 독일6군, 스탈린그라드 시내 돌입.
- 11월 8일 -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 11월 11일 - 독일, 비시정권하의 비점령 프랑스 지역을 점령 지역으로 편입시켜 튀론항을 제외한 프랑스 전 영토를 점령.
[편집] 1943년
- 1월 25일 - 미국과 영국,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무조건 항복 원칙' 발표.
- 1월 31일 -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 승리.
- 5월 13일 - 북아프리카의 독일-이탈리아군 항복.
- 6월 10일 - 코민테른 해산.
- 7월 3일 - 독일과 소련사이에서 쿠르스크 전투개시
- 7월 10일 - 미국과 영국 연합군, 시칠리아 섬 상륙.
- 7월 25일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무솔리니를 체포하고, 바돌리오 장군을 내각으로 삼다.
- 7월 23일 - 쿠르스크 에서 소련군 승리 독일군 동부전선 주도권상실
- 8월 24일 - 미.영 지도자들, 퀘벡 회담. 제2 전선 결정.
- 9월 3일 - 이탈리아, 연합국에 항복.
- 9월 8일 - 독일, 로마 점령.
- 9월 15일 - 무솔리니 구출, 파시스트 공화 정부(살로 공화국) 수립.
- 10월 13일 - 국왕과 바돌리오 내각, 남쪽으로 도피. 독일에 선전포고.
- 10월 19일 -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상 회의.
- 11월 26일 - 미국, 영국, 중국 카이로 회담. 한국 독립 결의.
- 11월 28일 - 미국, 영국, 소련, 테헤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 토의.
- 12월 1일 - 카이로 선언 발표.
[편집] 1944년
- 1월 20일 - 소련, 레닌그라드 해방.
- 5월 13일 - 독일군, 크림 반도에서 후퇴.
- 6월 4일 - 이탈리아 전선의 미국 및 영국군, 로마 해방.
- 6월 6일 - 역사상 최대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돌입.
- 6월 22일 - 소련군 바그라티온 작전개시
- 7월 20일 - 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생
- 7월 22일 - 연합국 45개국, 브레턴우즈 협정을 맺고, IMF와 IBRD 설치.
- 8월 1일 -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발발
- 8월 19일 - 바그라티온 작전 성공, 독일 중부집단군 괴멸
- 8월 24일 - 루마니아, 연합군에 항복하고 동맹국의 지위를 포기함.
- 8월 25일 - 연합군, 파리 해방. 루마니아, 독일에 선전포고.
- 8월 26일 - 불가리아, 동맹국에 빠져나와 중립 선언. 훗날, 소련이 선전포고를 하자 곧바로 항복함.
- 9월 2일 - 핀란드, 독일과 국교 단절.
- 9월 9일 - 샤를 드골, 임시정부 수립. 불가리아, 조국전선정부 수립.
- 9월 10일 - 불가리아, 연합국으로 전환. 독일에 선전포고.
- 9월 19일 - 핀란드, 영국 및 소련과 휴전 협정 조인.
- 10월 9일 - 영국과 소련의 지도자들, 모스크바 회담. 발칸 분할에 대해 의견 일치.
- 10월 11일 - 헝가리의 국가원수인 미클로시 호르티가 나치 독일에 의해 감금당함.
- 12월 10일 - 소련군과 티토의 군대가 베오그라드를 해방.
- 12월 31일 - 헝가리, 독일에 선전포고.
[편집] 1945년
- 1월 17일 - 소련군, 바르샤바 해방.
- 2월 11일 - 미.영.소 지도자들, 얄타회담.
- 4월 12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죽자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함.
- 4월 13일 - 소련군, 빈 해방
- 4월 22일 - 소련군, 베를린 돌입.
- 4월 28일 - 무솔리니 총살됨.
- 4월 30일 - 히틀러 자살. 칼 되니츠가 아돌프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총통직을 계승함.
- 5월 7일 - 독일군, 서방연합군에 항복. 이 때 덴마크가 해방됨.
- 5월 8일 - 독일군, 소련군에 항복.
- 6월 23일 - 오키나와, 미군에 점령됨.
- 6월 26일 - 국제연합헌장 조인.
- 7월 17일 - 포츠담 회담.
- 7월 27일 - 영국에서 애틀리 내각이 성립.
- 8월 6일 - 미국,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 8월 8일 - 소련, 일본에 선전 포고.
- 8월 9일 - 미국,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 8월 12일 - 소련, 한국 동북부 도시 나진, 웅기를 점령.
- 8월 14일 - 소련군, 한국 동북부 도시 청진 상륙 감행 .
- 8월 15일 - 히로히토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다. 한국은 이 날을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다.
[편집] 참고 자료
[편집] 참고 전쟁
영독전쟁, 독소전쟁,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의 중일전쟁,태평양전쟁
[편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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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선 | 폴란드 · 가짜 전쟁 · 덴마크와 노르웨이 · 프랑스 및 베네룩스 · 영국 · 동부 전선 1941년 ~ 1945년 · 계속 전쟁 ·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 소련의 레닌그라드 |
아시아 및 태평양 전선 | 중국 · 태평양 · 미드웨이 섬 · 솔로몬 · 동남아시아 · 진주만 · 1945년 만주 |
지중해, 아프리카 및 중동 | 지중해 · 동아프리카 · 북아프리카 · 서아프리카 전역 · 발칸 반도 · 중동 · 마다가스카르 · 이탈리아 |
기타 | 대서양 · 전략 폭격 · 북아메리카 폭격 |
동시대 전쟁 | 국공 내전 · 소련-일본 국경 분쟁 · 겨울 전쟁 · 프랑스-태국 전쟁 · 영국-이라크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