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군대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붉은 군대(러시아어: Красная Армия 크라스나야 아르미야[*]) 또는 적군(赤軍)은 소비에트 연방의 정규군이었다. 정식 명칭은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 (러시아어: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ая Красная Армия 라보체-크레스티얀스카야 크라스나야 아르미야[*]였다. 1988년 당시 정규군의 총원(總員)은 523만 명에 이르렀으며, 병력의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목차 |
[편집] 역사
[편집] 기원
붉은군대의 전신은 혁명 기간 중에 편성되었던 적위대(赤衛隊)이다.
혁명에 가담한 노동자와 병사들로 구성된 민병대 수준이었던 적위대를 군대로 재탄생시킨 사람은 레온 트로츠키였다. 페트로그라드(1914년에서 1924년 당시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부터 트로츠키는 군사 부문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 적위대를 개편하여 백군에 대항하는 적군을 만들게 된다.
특기할만한 제도로는 정치위원제도이다. 나폴레옹의 경우처럼 군대내의 전문적인 직업군인이 혁명정부에 반기를 들 것을 두려워한 트로츠키는 소련 공산당에서 파견된 정치위원을 배치하여 직업군인을 감시,감독하게 하였다. 붉은군대의 지휘관들중 상당수가 사상성이 의심스러운 제정러시아 장교출신이라는 점도 감안되었다. 그리고 정치위원의 임무중에는 한국군의 정훈장교처럼 장병들에게 국가와 당에 대한 충성심을 지도하는 역할도 있었다. 정치위원은 야전군에서 소대까지의 모든 단위부대에 지휘관과 동시에 배치되었으며, 부대의 명령은 지휘관, 참모장, 정치위원 세명의 승인이 있어야만 집행되었다. 이 제도는 지휘권의 단일화이라는 점에서는 부정적이었으나, 군에 대한 소련 공산당의 우위를 통해 내란을 방지한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모든 공산국가의 군대에서는 소련을 본받아 정치위원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군사쿠데타가 벌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편집] 제2차 세계대전
소련군은 동서 양방향에서 반공적인 일본과 독일의 침략이 노골화된 1930년대 들어와 위기감을 느끼고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공산 혁명과 함께 폐지된 군내 계급이 부활하였다. 이시기의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소련군은 전차, 장갑차, 전투기로 이루어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양적 기계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조직개편이나 효과적 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특히 1930년말 붉은군대를 덮진 대숙청의 회오리바람은 경험많은 고급장교들 상당수를 제거시켜, 닥쳐올 전쟁에서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게 되었다.
[편집] 냉전
소련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에 대항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 이외에도 1949년에 원자 폭탄(原爆)을 개발하였고, 1961년에는 수소 폭탄 실험을 하여 현재까지 폭발한 가장 큰 폭탄이었던 차르 폭탄을 폭발시켰다. 그 이외에도 핵무기를 탑재 할 수 있는 초음속 폭격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탑재 가능한 원자력 잠수함 등을 배치해,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1년의 소련의 해체와 함께 붉은 군대도 해체되었다.
[편집] 조직
[편집] 통제기구
- 국방인민위원회
- 적군참모본부
[편집] 군사행정단위
- 아르항겔스크 군관구
- 레닌그라드 군관구
- 발트 군관구
- 서부 특별군관구
- 키예프 특별군관구
- 오데사 군관구
- 북카프카스 군관구
- 자카프카스 군관구
- 모스크바 군관구
- 볼가 군관구
- 중앙아시아 군관구
- 우랄 군관구
- 시베리아 군관구
- 자바이칼 군관구
- 하리코프 군관구
- 오룔 군관구
- 극동전선
[편집] 해군
해군은 해군인민위원부(海軍人民委員部)에 소속.
- 북양 함대
- 발트 함대
- 흑해 함대
- 태평양 함대
- 북태평양 소함대
- 아무르 소함대
- 카스피 소함대
- 다뉴브 소함대
- 핀스크 소함대
[편집] 역대 지도자
[편집] 주요 무기
[편집] 주요 전쟁, 전투
[편집]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