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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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윤(李範允, 1856년 5월 3일 ~ 1940년 10월 20일)은 대한제국의 간도관리사를 지낸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다.
[편집] 생애
경기도 고양군 출생이다. 구한말 간도 문제로 청나라와의 갈등 끝에 변계경무서가 설치된 뒤 1902년 간도시찰로 임명되기까지의 경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간도로 파견되었고, 이듬해에는 간도관리사로 임명되어 간도 지역 조선인에 대한 행정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이범윤은 이 지역의 포수들로 자위적 성격의 군대인 사포대를 조직하였는데, 이 사포대가 향후 간도 지역 의병운동의 한 기반이 된다.
간도관리사로 재직 중이던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러시아 군대와 연대하여 함경북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1906년 이범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러시아령으로 망명했다.
이 지역에 미리 이민해온 거부 최재형의 도움으로 의병 부대(연추의병부대)가 조직되었으며, 러시아제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의병 지원을 위한 동의회(총장 최재형)과 창의회도 결성했고, 그는 연추의병부대 총독에 취임했다. 안중근과 엄의섭 등이 참가한 연추의병부대는 러시아령에 머물면서 수차례 국내에 진입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9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그는 유인석의 13도의군(十三道義軍, 도총재 유인석) 조직에 참가했다. 의병장 출신들이 중심이 된 13도의군에는 안창호와 이갑 등 계몽 운동 계열의 인사들도 참가하여 연합 조직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이범윤이 창의군 총재를 맡은 이 조직과 한일 병합 조약 무효를 주장하는 성명회(聲明會)는 그러나 러시아 정부의 체포령과 탄압에 곧 해체되었다. 이범윤은 숨어지내다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어 7개월간 유형 생활을 했다.
1911년 연해주로 돌아와 홍범도, 이상설 등 이 지역의 독립 운동가들과 권업회(회장 최재형)를 조직해 얼마후부터 총재를 맡았고, 《권업신문》도 발행했다. 그는 의군부와 대한독립군단의 총재, 신민부의 참의원 원장로 추대되는 등 북간도와 연해주 지역 무장 독립 운동의 대부로 활동하다가 1940년 경성부에서 병사했다.
[편집] 참고자료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이범윤,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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