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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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없음 | |||||
국가: 인노 에 마르키아 폰티피칼레 | |||||
수도 | 바티칸 시 41°54′ N 12°27′ 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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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 라틴어, 이탈리아어 | ||||
정부 형태 | 교황이 통치 베네딕토 16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조반니 라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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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 |
라테란 조약 1929년 2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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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0.44 km² (194위)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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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년 어림 • 2005년 조사 • 인구 밀도 |
명 (235위) 921명 2,093명/km² (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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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PPP) • 전체 • 일인당 |
년 어림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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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 유로 (ISO 4217:EU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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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 여름 시간 |
CET (UTC+1) (UTC+1) CEST (UTC+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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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도메인 | .va | ||||
국제 전화 | +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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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까지는 바티칸 리라를 사용하였다. |
바티칸 시국(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æ 스따뚜스 끼비따디스 바띠까나이,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 스따또 델라 칫따 델 바띠까노, 문화어: 바띠까노 시국)은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시내에 위치해있으며, 벽으로 둘러싸인 영토로 이루어져 있는 내륙국이자 독립 도시 국가이다. 바티칸 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0.44㎢의 면적에 약 800명 정도의 인구를 지녔으며 면적과 인구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 국가이다.
바티칸 시국은 1929년 라테란 조약에 의해 새롭게 세워진 나라이다. 이전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으로 존속하였으나, 대부분의 영토는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합병되었고, 10년 후인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었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 통치하는 신권 국가로 로마 가톨릭의 상징이자 중심이다. 바티칸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나 수도자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 관계에서의 정식 명칭은 바티칸 시국이 아니라 성좌(聖座, Sancta Sedes)이다.
목차 |
[편집] 영토
‘바티칸’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은 기독교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의 시대로, 바티칸 언덕을 뜻하는 라틴어 Mons Vaticanus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로마의 북서부에 있는 바티칸 언덕과 그 앞 인근에 성 베드로 대성당, 사도궁과 시스티나 경당 그리고 바티칸 미술관 등의 건물들이 세워진 평원이다. 이 지역은 1929년까지 로마의 보르고 지구의 일부분이었다. 로마 시와 분할된 것은 레오 4세가 테베레 강 서쪽 연안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길게 성벽을 쌓아 올린 때부터이며, 이후 레오 4세의 벽을 포함하여 바오로 3세, 비오 4세, 우르바노 8세가 새로 쌓아올린 성채 덕분에 면적이 더 확장되었다. 1929년 라테란 조약을 맺으면서 이탈리아 정부가 바티칸의 영토를 환상선에 의해 둘러싸인 구역을 경계선으로 명시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일부 국경 지역은 벽이 없는 대신 어떤 건물들로 선을 긋는 것으로 대신하였으며, 국경의 작은 일부분에는 현대식 벽을 건설하였다. 바티칸의 영토로 포함된 성 베드로 광장은 로마의 나머지 부분과 격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은 대체적으로 성 베드로 광장 밖의 비오 12세 광장과 바오로 6세 길 구역을 상상의 경계선으로 보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 앞에는 테베레 강까지 닿는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와 이어져 있는데, 이 웅장한 도로는 라테란 조약을 체결한 기념으로 무솔리니에 의해 건설되었다.
또한 라테란 조약에 따라 교황청은 이탈리아 영토 안에 일정한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카스텔 간돌포와 대주교좌 성당들 그리고 로마와 이탈리아 전역에 산재한 교황청 소속의 관청이나 사무소 등으로 이러한 소유지는 외국 대사관의 지위와 유사한 치외 법권을 누리고 있다.
카스텔 간돌포와 대성당으로 지명된 시설은 경찰들이 정기적으로 순찰하며, 이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아닌 바티칸 시국의 대리자들이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보통 바티칸과 이탈리아 양국이 공동으로 치안을 유지한다.
바티칸의 기후는 로마와 똑같아서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라고 보면 될 것이다. 특별히 언덕 위이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기도 한다. 2007년 7월 바티칸은 탄소 방출에 관해 중립적 입장을 최초로 밝힌 국가가 되었으며 헝가리에 바티칸 기후 삼림을 조성하고 있다.
[편집] 국가원수
- 이 부분의 본문은 교황입니다.
[편집] 역사
바티칸 시 (바티칸 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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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광장, 바티칸 | |
기준 | Ⅰ, Ⅱ, Ⅳ, Ⅵ |
영 문 명 | Vatican City |
프랑스명 | Cité du Vatican |
등록구분 | 문화유산 |
등록년도 | 1984년 |
비고 | {{{비고}}} |
웹사이트 | {{{사이트설명}}} |
- 이 부분의 본문은 교황령입니다.
바티칸이 자리잡기 전에 이곳 바티칸 언덕(Mons Vaticanus)은 원래 고대 로마인들이 로마 신화의 퀴벨레와 그 배우자 아티스를 숭배하던 곳이었으며, 점을 치는 언덕(ager vaticanus)이라 부르며 오랫동안 신성하게 여겨왔다. 그 때문에 로마인들은 이곳에 거주민들의 통행과 정착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서기 1세기 초에 대(大)아그리피나(BC 14년 - AD 33년 10월 18일)는 바티칸 언덕과 그 주변에 물을 대고 그 자리에 자신의 개인 정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칼리굴라(37년 - 41년)는 이곳에 거대한 원형경기장(Circus Gaii et Neronis)을 만들었고, 나중에 황제 네로대에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 중앙에 장식된 오벨리스크는 본래 칼리굴라가 원형경기장을 꾸미기 위해 서기 37년에 헬리오폴리스에서 로마로 가져와 경기장의 장식에 사용되었다.
서기 64년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 이후 바티칸 언덕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성 베드로도 이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드로는 원형경기장에서 거꾸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원형경기장 맞은편에는 비아 코르넬리아를 경계로 삼아 고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4세기 초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 언덕은 다신교의 각종 이교 신들을 위한 제단과 무덤, 비문 등이 지어졌었다. 이러한 고대의 잔재들은 수세기에 걸쳐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공사를 할 때 빈번하게 발견하였으며, 교황 비오 12세대에는 본격적으로 대규모적인 발굴작업을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326년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최초의 성당인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졌고, 5세기 초에 대성당 근처에 궁전이 지어지면서 이 지역은 점차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황의 권력은 점차적으로 커져갔으며 19세기 중반 신흥국가인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기 전까지 약 천년 동안 로마와 그 주변 지역들을 장악해 교황령이란 이름 아래 다스렸다. 이 시기의 대부분 동안 교황들의 거주지는 바티칸이 아닌 라테라노 궁전이었으며, 아비뇽 유수기(1309년 - 1377년)를 제외한 최근 세기 동안에는 퀴리날레 궁전이었다.
19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민족주의자들이 창궐하면서 교황청은 차츰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갔으며, 1870년에는 마침내 수도인 로마마저 점령당하면서 교황의 소유지들은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1861년부터 1929년까지 60여년 동안 이러한 로마 문제라고 불리는 상태가 유지되었다. 이로 인해 천년 동안 이어지던 교황령은 종말을 고하고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의 상층부들은 바티칸으로 대거 피신했다. 이후 교황들은 로마 및 기타 지역에 대한 이탈리아 국왕의 권한을 인정하라는 이탈리아 정부의 주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당한 요구라며 항의했고 바티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교황령이 이탈리아에 병합된 이후에도 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교황청의 이탈리아로부터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를 계속 인정하였다. 이탈리아는 바티칸 안에 있는 교황청에 대한 무력행사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퀴리날레 궁전을 포함하여 교회 재산의 상당수를 몰수해갔다. 교황령의 마지막 통치자인 교황 비오 9세는 로마를 잃은 이후 스스로를 ‘바티칸의 죄수’라고 표현했다. 이런 상황은 1929년 2월 11일 이탈리아 정부와 교황청 간에 라테란 조약을 체결되면서 종식되었다.
라테란 조약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교황 비오 11세 양측으로부터 전권을 이양받은 베니토 무솔리니와 피에트로 가스파리 추기경에 의해 각각 조인되었다. 이 조약으로 이탈리아는 바티칸 시국을 독립국가이며 교황청의 소유와 국제법상 치외법권을 인정하였으며 로마 가톨릭을 이탈리아의 국교로 삼았다. 바티칸 또한 로마를 수도로 한 이탈리아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더불어 양측은 라테란 조약에 반대되는 이전의 모든 법들을 폐기하였다. 라테란 조약은 파시즘 정권이 물러나고 1944년 이탈리아 공화국이 들어선 후에도 그대로 채택되었으며, 다만 1984년 양측 합의로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존속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의 새로운 정교협약으로 수정되었다.
대한민국과는 1963년 12월 외교관계를 공식 수립하였으며, 198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바티칸 시 전체가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편집] 정치 제도
바티칸은 선거로 뽑힌 새 교황이 권력을 갖는 독특한 제도인 콘클라베를 가지고 있다. 콘클라베는 전세계의 80세 이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소성당에 모여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 번 선출된 교황은 특별한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이상 평생 교황직을 유지하게 된다. 교황은 바티칸 시국과 전세계 교회에 대한 사법권, 통치권, 입법권을 갖고 있다.
교황청은 바티칸 시국의 정부 기구이며 그와 동시에 교회 통치 기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 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등 전세계의 교회를 대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내무를 주교 위원회(the Pontifical Commission)에 위임하고 종교적인 활동에만 관여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법률은 교회법의 적용을 받는다. 만약 교회법에 관련되지 않은 내용일 경우 로마 시의 법률을 적용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은 독립된 국가로서 다른 나라에 외교관을 파견하거나 외국의 외교관을 자국에 주재시킬 권리를 갖고 있다. 영토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의 바티칸 주재 대사관은 로마 시에 위치해 있다.
[편집] 경제
바티칸의 국가 예산은 970만 유로(117억 원)이다. 주된 사업으로는 출판업, 관광료, 모자이크 제작, 제복 제작 등이 있다. 바티칸은 특수한 국가라서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 활동은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베드로 성금’으로 알려진 전세계의 로마 가톨릭 신도들로부터의 모금이나 우표 판매, 바티칸 박물관의 입장료 수입, 출판물 판매 및 그러한 수입을 종교 활동 협회를 경유해 투자 운용을 실시하는 것으로 국가 재정을 조달하고 있다.
덧붙여 바티칸 직원들의 급여 수준은 로마 시청 직원들의 급여의 평균보다 약간 더 좋다고 한다. 독자적인 통화를 발행하기 않기 때문에, 이전에는 리라가 이용되고 있었지만, 2002년 1월 1일 이후 유로가 유통하게 되었다.
바티칸의 국가 재정 관리를 실시하는 기관으로는 1942년 교황 비오 12세가 설립한 바티칸 은행(Instituto per le Opere di Religioni/IOR)이 있다.
[편집] 주민
이 나라의 특성상 모든 주민들이 로마 가톨릭 신도들이다. 주민 수는 총 921명이며, 바티칸 성벽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민들은 바티칸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대부분은 성직자와 수도자이며, 그 중에는 추기경 등의 고위 성직자, 신부 등의 일반 성직자, 수사와 수녀 등이 포함된다. 또한 스위스 근위병들도 바티칸 국민이다. 교황청에서 일하는 성직자 이외의 일반 직원은 3000명에 달하지만, 스위스 근위병을 포함해 그들의 대부분은 바티칸 밖에 거주해, 그 곳으로부터 통근하고 있다.
또, 바티칸도 독립국인 이상 국적이라고 하는 개념도 존재하고 있다. 2003년 말의 시점에서 바티칸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552명에 이른다. 그 중 61명이 추기경, 346명이 주교, 신부 등의 기타 성직자이다. 101명이 스위스 근위병, 44명이 일반 직원이다. 바티칸 국적 소유자에게는 국제적으로 이중 국적이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티칸 국적과 아울러 종래의 국적도 유지하고 있다.
바티칸 국적은 성직자를 포함해 기본적으로 바티칸에서 직무한 기간에 한해서 주어진다. 교황청 직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인 직원들은 외교 업무 등에 있어 특별히 필요가 없는 한, 바티칸 국적은 주어지지 않는다.
[편집] 언어
이 나라의 공용어는 라틴어이다. 라틴어 외에도 이탈리아어(많이 쓰임), 독일어, 영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가 쓰인다.
[편집] 종교
로마 가톨릭은 이 나라의 국교이자 100%가 믿는다.
[편집] 국방
바티칸은 작은 도시 국가이기 때문에, 군사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경찰력도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경찰에 의존하고 있다. 덧붙여 공공연히 개방되고 있는 구역으로의 입국은 원칙적으로 자유롭고, 이탈리아와의 국경 관리나 검역은 행해지지 않았다. 교황의 즉위식이나 장례식이 있는 날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뇌나 귀빈이 참례하기 때문에, 테러를 염려하여 이탈리아군이 직접 바티칸 일대의 경비를 실시한다.
교황의 근위병으로서 스위스 근위대가 상주하고 있다. 1505년 1월 22일에 교황 율리오 2세에 의해 창설되어 1527년 로마가 신성로마제국에게 침공받았을 때(로마 약탈),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피난을 스위스 근위병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왔다. 스위스 국내에서 교회로부터의 추천을 받은 남자 가톨릭 신도가 선택되고 있으며, 장거리 행군등의 군사훈련을 통해 한 사람의 군인으로 성숙한다. 그 제복은 미켈란젤로의 디자인이라고 한다. 스위스 근위대는 일단 무기를 휴대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의장병이다. 이전에는 스위스 근위대 뿐만이 아니라, 교황 기마 위병이나 궁전 위병이라고 하는 근위대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형식적인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서 1970년에 폐지되었다.
[편집] 문화
바티칸은 나라 자체가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의 보고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시스티나 경당 등에는 산드로 보티첼리, 베르니니,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하는 르네상스 예술 사상의 거장들이 마음껏 솜씨를 발휘한 작품들로 가득 차 흘러넘치고 있다. 또 바티칸 박물관과 바티칸 문서 자료관에는 역사상 귀중한 콜렉션을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다. 바티칸은 1984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바티칸은 일종의 성지(聖地)이기 때문에, 명문화되지는 않지만 복장 규정이 있다. 특히 여성은 관광객이라 해도, 바티칸에 입국할 때 복장에 신경쓸 것(반바지 금지 등)을 요구받는다.
바티칸은 순례자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부터 방문하는 관광객으로 언제나 떠들썩하다. 교황은 세계 각국에서 방문하는 신도들을 위해서 매주 일요일에는 그들 앞에서 미사를 거행해, 평일에도 평신도들과 함께 하기 위해 알현 등을 실시하고 있다. 부활절 등 특별한 축일에는 성 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보여 전세계에 인사를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다.
[편집] 국경일
날짜 |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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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 성모 마리아 대축일 |
1월 6일 | 주님의 공현 대축일 |
2월 11일 | 라테란 조약 기념일 |
3월 19일 | 성 요셉의 축일 |
4월 19일 |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출일¹ |
4월 24일 |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즉위일¹ |
3월-4월 | 성주간(聖週間) 목·금·토요일, 부활절, 부활절 다음 월요일(유동적) |
5월 1일 | 노동절 |
5월 중 | 예수 승천 대축일 (부활절 40일 후) |
5월 중 | 성체 대축일 |
6월 29일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대축일 |
8월 14일-8월 16일 | 성모 승천 대축일 |
11월 1일 | 모든 성인들의 날 |
11월 2일 | 위령의 날 |
12월 8일 |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
12월 25일 | 성탄절 |
12월 26일 | 성 스테파노의 축일 |
12월 31일 | 성 실베스테르의 송년식 |
- ¹교황에 따라 바뀐다.
[편집] 바깥 고리
- (독일어/영어/이탈리아어/…) 교황청 공식 홈페이지
- (한국어/이탈리아어)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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