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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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주/안석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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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1년 한성부 |
사망 | 1950년 |
국적 | |
분야 | 서양화,무대장치,영화연출 |
안석주(安碩柱, 일본식 이름: 安田榮, 1901년 ~ 1950년)는 한국의 화가,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 감독이다. 안석영(安夕影)으로도 불린다.
목차 |
[편집] 생애
한성부 출신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후 언론사 삽화 작가로 일했다. 박영희, 김기진 등과 함께 참가자들 각자의 이름 머릿글자를 따서 작명한 파스큘라에 참가하여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등 문예 운동에 뛰어들었다.
영화계에는 1937년 《심청전》을 연출해 데뷔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1년, 조선인은 지원병으로 갈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던 조선 청년이 마침내 지원병 제도의 문호 개방에 힘입어 지원병으로 참전한다는 내용의 어용 영화 《지원병》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이 영화에는 최운봉과 문예봉이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친일 영화 제작 외에도 황도학회 결성식에 참가하고 조선임전보국단에 가담했으며 《신시대》의 표지화도 그려,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다.
광복 후에는 조선영화인동맹에 참가했다가 좌익 계열이 주도권을 잡아가자 탈퇴하여 우익 영화인들을 규합하여 영화감독구락부를 조직[1]하였고, 우익 계열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47년 아들인 작곡가 안병원이 곡을 붙인 〈우리의 소원〉 노래를 작사하였다. 이 노래는 본래 '우리의 소원은 독립 / 꿈에도 소원은 독립'이라는 가사였으나, 이듬해 교과서에 실리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 꿈에도 소원은 통일'로 바뀌었고 이후 오랫동안 널리 불리고 있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때 양 정상인 김대중과 김정일이 손을 잡고 함께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 안석영 -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 (영어) Seok-yeong Ahn -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편집] 참고자료
- 방학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사한 안석주 - 식민지 지식인의 나약함이여", 《우리힘》, 2005년 12월 15일. 2008년 3월 5일에 읽어봄.
- 이태호. "미술이 대중 황국신민화의 도구 - 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성②", 《컬처뉴스》, 2005년 4월 15일.
[편집] 주석
- ↑ 편집부 (1999년 12월 22일). 《한국현대 예술사대계 1 (해방과 분단 고착 시기)》. 서울: 시공사, 98쪽. ISBN 89527052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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