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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왕후 - 위키백과

신덕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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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왕후(神德王后, 1356년 ~ 1396년 음력 8월 13일)는 조선의 1대 태조의 둘째 부인이자 계비(繼妃)이다. 시호는 순원현경신덕왕후(順元顯敬神德王后).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康允成)과 진산부부인 강씨의 딸로 본관은 곡산이다. 1897년 대한제국 때에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로 추존되었다. 태조의 충실한 내조자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그녀의 뛰어난 지략은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편집] 생애

신덕왕후는 황해도 곡산고려 충혜왕 때 세도를 떨친 권문세가의 규수로 태어났다. 이성계가 타고난 무예와 지도력으로 그간 쌓은 군공을 바탕으로 권문세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크게 성장을 한 후 정략결혼을 하였다. 혼인할 당시 강씨는 이성계보다 21살 가량 연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출생년도는 남아있지 않다. 당시 이성계는 첫 부인 신의왕후 한씨와의 사이에 장성한 아들들을 두고 있었다.

이성계가 강씨와 처음 만난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날 호랑이 사냥을 하던 이성계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는데, 마침 그 우물가에 한 여인이 있었다. 이성계가 그 여인에게 물 좀 떠 달라고 청하니, 여인은 바가지에 물을 뜨고나서 버들잎 한 줌을 물 위에 띄워주었다. 이에 이성계는 이 무슨 고약한 짓이냐며 나무랐다. 여인은 갈증으로 급히 달려온 바, 냉수를 마시면 탈이 날 것 같아 버들잎을 불며 천천히 마시라고 일부러 그리했다고 수줍게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내심 감탄한 이성계가 그 때서야 여인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여인의 미색이 아주 빼어났다. 여인의 지혜와 미모에 이성계는 한동안 넋을 잃었다. 바로 그 우물가의 여인이 강씨였다. 이 이야기는 고려태조장화왕후의 만남에 대한 설화와 동일하다. 장화왕후와 신덕왕후는 각각 건국 시조의 두 번째 부인이며 지방의 세력 있는 호족의 딸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에서 와전된 것이거나, 많은 지방에서 전해내려오는 유사한 구조의 버들잎 설화가 이성계와 결부된 것일 수 있다.

1392년 3월 이성계가 해주에서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친 것을 계기로 정몽주가 그를 제거하려 했을 때 생모인 한씨의 무덤에서 여묘살이를 하던 이방원을 급히 해주로 보내 이성계를 개경으로 불러냈다. 또한 이방원이 그 해 4월 자객을 보내 정몽주를 죽였을 때도 대신을 함부로 죽였다며 크게 꾸짖던 이성계의 분노를 무마시킨 것도 강씨였다. 이는 강씨의 수완과 결단력을 상징해주는 대목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대담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의 개국으로 강씨는 1392년(태조 1년) 8월 7일 조선의 첫 왕비가 되어 현비(顯妃)에 봉해졌다.

강씨는 신의왕후 소생의 장성한 왕자들을 제치고 자기 소생의 왕자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뜻이 맞은 정도전과 정치적 연합을 하여 의안대군 이방석을 왕세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장남도 아니고, 더군다나 후처 소생의 차남이 왕세자가 된다는 것을 정안대군 이방원을 비롯한 신의왕후의 아들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1396년 음력 8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던 신덕왕후가 죽자 태조는 몹시 애통해하며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능 옆에 조그만 암자를 지어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향차를 바치게 하다가 다시 1년 간의 공사를 거쳐 흥천사(興天寺)를 지어주기도 하였다. 태조는 흥천사가 완공되자마자 그 때부터 능과 절을 둘러보는게 일상사가 되었다. 능과 절을 다 돌아본 뒤 신덕왕후와의 소생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고, 신덕왕후의 능에 재를 올리는 절의 종소리가 나야만 비로소 침소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수라 때에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그곳의 불경 소리를 들은 후에야 비로소 수저를 들어 식사를 하곤 하였다.

신덕왕후가 승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의안대군은 포함한 신덕왕후의 아들들은 모두 제거되었고, 사위도 살해당하여 딸인 경순궁주는 여승이 되었다. 신덕왕후는 자기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는데 성공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자기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만 셈이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왕이 된 신의왕후 소생의 다섯째 왕자 이방원은, 건국 과정에 공을 세운 아들들을 제치고 자신의 소생인 어린 막내를 왕세자로 내세운 신덕왕후를 태조 사후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태조가 특별히 가까이 묻었던 신덕왕후의 능 정릉(貞陵)을 당시 사대문 밖 경기도 지역이던 현 위치로 이장했고, 묘의 봉분을 깎고 정자각은 헐어버린 뒤 능의 석물을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사용했다. 사후 300년 가까이 지난 1669년(현종 10년) 8월 5일에야 지위가 왕비로 복위되고 신주를 종묘로 들여왔으며, 황폐하게 버려진 정릉이 복구되었다. 또한 8월 20일에는 존호를 순원현경신덕(順元顯敬神德)으로 추존하였고, 1899년(광무 3년) 12월 19일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로 최종적으로 추존되었다.

[편집] 자녀

[편집]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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