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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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선(大諲譔, ? ~ ? 재위: 906년?~926년)은 발해의 제15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며, 시호는 없다. 제13대 왕 대현석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고 알려졌지만, 김육불이 그의 저서 《발해국지장편》에서 대위해가 발해 제14대 왕이었으므로 대인선이 대위해를 이어 다음 왕이었다고 주장했다. 대위해 왕의 치적에 대해서 지금 연구하고 있다.
[편집] 발해의 최후
대인선의 재위시에 국제정세는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당나라에선 황소와 안녹산의 난으로 국력이 약해졌다. 이 때 주전충이 당 애종을 쫓아내고 직접 황제가 되어, 후량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한편, 신라에서도 지방호족들과 농민반란군의 항거가 거세졌다.
한편, 거란족은 7세기 전·후반에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는데, 당나라 내부에서 거듭된 혼란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그들은 야율아보기를 추장으로 삼고, 동쪽과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대인선은 거란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발해 내부의 거듭되는 귀족세력의 쟁탈전으로 지도력을 많이 상실했다. 한편, 대인선은 고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결국 925년 겨울, 거란이 침공했고 단 10여 일 만에 상경용천부 홀한성이 포위되었다. 발해인들은 거란과 맞섰으나 패배하였고, 926년 발해는 멸망하고 말았다.
야율아보기는 처음엔 그를 정성껏 대접했다. 그러나 대인선이 남아있는 발해 군사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야율아보기는 화가 나서 그를 압송했다. 그리고 대인선에게는 자신의 애마 오로고의 이름을 따서 ‘오로고’로, 대인선의 비는 자신의 부인 소황후의 애마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였다.
한편, 대인선의 맏아들이자 발해 태자 대광현은 926년 1월에 고려로 귀순하였다.
[편집] 발해인들의 부흥운동
비록 대인선의 항복으로 발해는 멸망했지만 발해인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유득공의《발해고》에 따르면 10세기 중엽부터 12세기까지 발해인들이 거란에게 대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발해국과 정안국, 흥료국, 대원국은 발해의 유민들이 세운 대표적인 나라이다. 후발해는 서기 928년에 건국하였다. 해체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안국은 936년에 건국하였다. 정안국은 고려와 외교관계를 맺으려 하였으나, 거란과의 마찰을 두려워한 고려에서 관계를 철회하였다. 그러나 고려와의 교류는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985년 정안국은 거란의 압박으로 멸망하였다. 대원국은 12세기에 세워졌고, 처음으로 "황제"칭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금나라와 전쟁에서 패배해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편집] 참고
앞선 왕 대위해 |
제 15 대 906년? - 926년 |
다음 왕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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