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아테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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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의 프라이테스1세는 프리아파티우스(제위 191~176)의 아들로 파르티아 제국을 기원전 176년에서 기원전 171년 까지 다스렸다. .
그는 엘부르즈의 산악족 마르디에게 패하였다.그는 요절하였고 그의 후계자로 그의 형제 미트리다테스 1세(제위 기원전171-138)를 임명하였다.
[편집] 역사
기원저 171년 프라아테스는 군대를 모집하고 원정하였다. 원정은 오랜동안 계획되었고 프라아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웃왕국을 토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였다. 원정의 좌우명은 라틴어 전장 울부짖음이였고 메디아의 주변에서 사용되었다. 그것과 함께 그는 엘 부르즈의 산악 종족 마르디와 파르티아의 남동쪽에 사는 유목민 시민디안을 정복하였다. 후일을 위해 그는 원정대의 휴식과 함께 북부를 남겨 두었다. 원정대는 1000명의 남녀와 말/노새로 구성되었다. 그의 원정대는 병참에 문제가 있었고 기원전 171년 가을 동안 그들이 계획했던 것보다 앞서 따라잡혔다. 이 때문에 프라아테스는 그나 다른이들이 사용할수 잇는 전쟁 기계를 만들기위해 시간을 얻었다. 그후 그는 병참문제때문에 이것들을 없애기로 선택하였다. 그리하여 프라아테스는 메디아의 지역들을 특히 하론 요새의 기초 벽을 정복하기로 계획하였는데 요새는 봉우리 근처에 지어져 있었다. 프라아테스가 그곳에 닿기 전에 스키타이인이 마르디의 나머지와 연합하였고 메디아의 담 근처의 매복으로 그를 놀라게 하였다. 프라아테스는 배에 화살을 맞고 요절하였다. 그러나 그의 죽은 직전에 그는 그의 아들의 하나를 임명하지 않고 그의 형제 현명한 장군 미트리다테스 1세를 임명하였다. 미트리다테스는 매복에서 겨우 탈출하고 아마도 무사하게 메디아로 돌아왔다.
[편집] 후임자
프라아텟 1세의 아들 프라아테스 2세는 새 독재 왕으로 임명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프라아테스 2세가 성숙하지 않아서 나라가 기아에 허덕이므로 부적합하였기 때문이였다. 후에 프라아테스 2세는 그의 삼촌 미트리다테스 1세에의해 마지막 유목민 계승자로 임명되었다. 이것은 파르티아의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고 다음해에는 모든 형태의 알콜 소비가 금지되었다. 약속은 그럼에도 파르티아 제국을 강화하는 와의 미트리다테스 1세의 비젼과 일치하였다. 특히 메디아와 하론요새의 나머지를 점령하려는 욕만은 강하였다.
전 임 프리아파티우스 |
제5대 파르티아 왕 기원전 176년 - 기원전 171년 |
후 임 미트리다테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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