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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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耽羅國)은 고대에서 중세까지 464년간 이어진 제주도의 왕국이었다. 백제, 신라의 영토였다가 15세기 초반에 조선에 완전 병합되었다. 탐라국이 정식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출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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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탐라의 기원
탐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을나·양을나·부을나의 3형제가 구멍에서 나왔다고 하는 삼성혈의 전설도 있지만, 역사적인 기록으로 보면 3세기 중국의 사서 삼국지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탐라가 498년 백제 동성왕에게 복속했다고 보이며, 백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갑자기 멸망하면서 탐라는 대혼란에 빠졌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이때 당에서 귀국하는 일본의 견당사가 우연히 탐라에 기항하면서 당군의 침공을 무서워하는 탐라는 당분간 일본에 조공을 계속 보냈다. 하지만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면서 탐라는 신라에 복속되었다.
[편집] 지배자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탐라에는 별주(-主) 또는 성주(星主), 왕자(王子), 도내(徒內)라고 하는 지배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칭호는 신라 문무왕이 주었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어쨌든 탐라 지배자의 이러한 칭호는 후세까지 계속되었다. 탐라성주가 왕을 겸하기도 했다.
[편집] 탐라국의 역대 왕
- 고을라왕(高乙那王)
- 건왕 (建王)
- 삼계왕 (三繼王)
- 일망왕 (日望王)
- 도제왕 (島濟王)
- 언경왕 (彦卿王)
- 보명왕 (寶明王)
- 행천왕 (幸天王)
- 환왕 (歡王)
- 식왕 (湜王)
- 욱왕 (煜王)
- 황왕 (惶王)
- 위왕 (偉王)
- 영왕 (榮王)
- 후왕 (厚王)
- 두명왕 (斗明王)
- 선주왕 (善主王)
- 지남왕 (知南王)
- 성방왕 (聖邦王)
- 문성왕 (文星王)
- 익왕 (翼王)
- 지효왕 (之孝王)
- 숙왕 (淑王)
- 현방왕 (賢方王)
- 기왕 (璣王)
- 담왕 (聃王)
- 지운왕 (指雲王)
- 서왕 (瑞王)
- 다명왕 (多鳴王)
- 담왕 (談王)
- 체삼왕 (體參王)
- 성진왕 (聲振王)
- 홍왕 (鴻王)
- 처량왕 (處良王)
- 원왕 (遠王)
- 표륜왕 (表倫王)
- 형왕 (逈王)
- 치도왕 (致道王)
- 욱왕 (勖王)
- 천원왕 (天元王)
- 호공왕 (好恭王)
- 소왕 (昭王)
- 경직왕 (敬直王)
- 민왕 (岷王)
[편집] 귀속
935년에 신라가 멸망하면서 탐라는 당분간 독립했으나, 938년에는 고려에 다시 복속되었다. 고려는 1105년에 탐라군을 설치했고 1121년에는 제주라고 개칭했지만, 별주, 왕자 등의 지배자 칭호는 인정하고 있었다. 원나라는 1274년에 탐라를 직할지로 삼고 목장을 설치했다. 원나라는 1294년에 탐라를 고려에게 돌려주었다. 조선 때 이르러서는 1402년(태종 2년) 10월에 성주와 왕자가 자발적으로 조선에 입조(入朝)하고 스스로 나라를 내놓았다. 태종은 탐라국이라는 국명과 성주, 왕자라는 칭호를 폐지하였다. 태종은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官),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官)이란 벼슬을 줌으로서 얼마간은 명예를 누리도록 하고 1416년(태종 16년)에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을 설치하였다. 1445년(세종 27년)에는 좌도지관과 우도지관이란 벼슬의 칭호를 진무, 부진무 등으로 바꾸다가 나중에는 폐지하였다.
[편집] 원나라의 영향
탐라국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당시 제주 방언이 몽골어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당시 원나라가 설치한 목장이 나중에 조랑말을 키우는 곳으로 발전했다. 원나라는 제주도에 절을 세우는 등 제주 건축물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다. 몽골인도 원나라 말기와 멸망될 때 제주도로 많이 이주했다.
그러나 몽골인의 지배는 제주도 사람들에게 좋게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다. 제주도 방언 중 가장 심한 욕 가운데 하나는 '몽고놈의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