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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李兌榮, 1914년 8월 10일 평북 운산 ~ 1998년 12월 17일)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변호사였다. 남편은 정치인 정일형이고, 장남은 정치인 정대철이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52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첫 여성이 되나 남편 정일형이 야당인사라는 이유때문에 판사 임용이 되지 않아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되었다. 1969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야당 국회의원인 남편과 함께 민주회복국민선언, 3.1민주구국선언에 참가하면서 수많은 민주화유공자들을 변호했고, 생전에 가족법 개정 및 호주제 폐지를 위해 힘썼다.
[편집] 에피소드
- 그의 남편 정일형이 신학교 교수로 근무하던 1942년, 강의에서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이길 확률은 희박하다"라고 한 것이 국가원수모독죄가 되어서 감옥에 끌려갔고, 이태영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이불장사를 했다. 이 때 가위의 날이 잘 들지 않아 "날이 잘 드는 가위 하나만 있었으면…"하는 것이 이태영의 소원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 후 이태영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정일형은 외무부장관 업무 및 세계의원연맹 참가 차 외국에 갈 때마다 가위를 하나씩 사서 이태영에게 "어려운 때를 잊지말고 살자"라는 말과 함께 선물했다고 한다.
[편집] 약력
- 평양 정의고등보통학교 졸업
- 이화여전 가사과 졸업
-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52년: 사법고시 합격
- 1956년: 여성법률상담소 설립[1]
- 1969년: 법학박사 (서울대학교, 한국이혼제도 연구)
-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참가
- 1976년: 여성백인회관 건립
- 1977년: 3.1민주구국선언 참가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 ↑ 연혁 - 1950 ~ 1960년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2007년 12월 1일에 읽어봄.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서명자 (총 71명) |
원로 |
윤보선 · 백낙준 · 이인 · 김홍일 · 유진오 · 정일형 · 정화암 |
독립투사 |
김재호 · 안재환 · 유석현 |
제헌의원 |
진헌식 · 송진백 · 황호현 |
가톨릭 |
윤형중 · 함세웅 · 박상래 |
기독교 |
김재준 · 함석헌 · 이영복 · 강신명 · 강원룡 · 김관석 · 윤반웅 · 조향록 · 이상린 · 박창균 · 강기철 · 계훈제 |
불교 |
법정 |
학계 |
이희승 · 정석해 · 이동화 · 전경연 · 박봉근 · 서남동 · 문동환 · 안병무 |
문인 |
이헌구 · 김정한 · 박연희 · 김규동 · 백낙청 · 고은 · 김윤수 · 김병걸 · 홍사중 |
언론인 |
천관우 · 리영희 · 장용학 · 김용구 · 부완혁 · 임재경 |
법조인 |
이병린 · 홍성우 · 황인철 · 한승헌 · 박경규 |
여성계 |
이태영 · 공덕귀 · 이우정 · 김정례 |
정치인 |
김영삼 · 양일도 · 안필수 · 고흥문 · 윤제술 · 김철 |
1976년 3·1명동구국선언 참가자 (총 20명) |
구속 기소 |
문익환 · 함세웅 · 김대중 · 문동환 · 이문영 · 서남동 · 안병무 · 신현봉 · 이해동 · 윤반웅 · 문정현 |
불구속 기소 |
고령자 |
윤보선 · 함석헌 · 정일형 |
여성 |
이태영 · 이우정 |
간접가담 신부 |
김승훈 · 장덕필 · 김택암 · 안충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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