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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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희(李龍熙, 1931년 6월 10일 ~)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민주언론의 사표 청암 송건호선생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으며, 50년이 넘는 정치역정에서 총선과 지방선거를 포함해 모두 14번 선출직 공직의 문을 두드렸으나,8번 고배를 마시고 6번(제3대 도의원, 제9,10,12,17,18대 국회의원)당선되는 등 17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 정치인이다. 오랜 정치활동과 탄탄한 지역구 관리 덕분에 여당이 참패한 5.31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충북 보은.옥천, 영동에서 군수 3명을 모두 당선시켜 새삼주목을 받았다. 또 지방선거 이후 새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해 당 중진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인선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1971년 대선 때 신민당 선전국장으로 당시 김대중(金大中.DJ)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면서 DJ와 인연을 맺었고, 유신 시절 DJ와 함께 내외문제연구소를 만들어 반독재 투쟁을 벌이는 등 DJ를 `형님'으로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 6.25 전쟁 발발후 자원입대했던 이 부의장은 전투의 상흔으로 아직도 파편 7개가 몸 속에 남아있다.
[편집] 약력
▲충북 옥천(78) ▲대전사범학교 ▲제3대 충청북도의회 의원(1960) ▲9,10,12,17,18대 국회의원 ▲신민당 지구당 위원장 ▲신민당 선전국장 ▲국회 농수산위원회 간사 ▲신민당 충청북도 지부장 ▲신민당 원내부 총무 ▲신민당 정무위원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 ▲국회재무위원회 위원 ▲신민당 정무위원 ▲신민당 사무총장 ▲통일민주당 부총재 ▲헌정민권회 부회장 ▲직선제개헌 여야8인정치야담 야당대표 ▲평민당 원외부총재 ▲평민당 부총재 ▲평민당 영등포을지구당 위원장 ▲평민당 당무지도위원회 의장 ▲신민당 최고위원 ▲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위 부위원장 ▲민주당 당무위원 ▲민주당 상임고문 ▲국민회의 보은,옥천,영동군지구당 위원장 ▲국민회의 부총재 ▲국민회의 지도위원 ▲국민회의 충청북도 지부장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상임고문 ▲새천년민주당 충북도지부장 ▲새천년민주당 보은,옥천,영동군지구당위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새천년민주당 조직강화특별위원장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실미도진상규명 대책위원장 ▲열린우리당 고문단장 ▲국회 행정자치위원장 ▲17대 국회부의장 ▲18대 국회의원(자유선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