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암 갈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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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갈라스 | ||
왓포드와의 경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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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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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네임 | William Gallas | |
출생일 | 1977년 8월 17일 | |
출생지 | 프랑스, Asnières-sur-Seine | |
키 | 183 cm | |
포지션 | 수비수 | |
클럽 정보 | ||
현 소속팀 | 아스날 FC | |
등번호 | 10 | |
클럽1 | ||
연도 | 클럽 | 출장수(골) |
1995-1997 1997-2001 2001-2006 2006- |
SM 캉 마르세유 첼시 FC 아스날 FC |
34(0) 111(5) 159(12) 32(6) |
국가대표팀2 | ||
2002- | 프랑스 | 65(2) |
1 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만 카운트되며, |
윌리암 갈라스(프랑스어: William Gallas, 1977년 8월 17일, Asnières-sur-Seine)은 프랑스 출신, 과들루프계 축구 선수이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FC에서 뛰고 있다. 그는 중앙 수비수로 주로 뛰지만, 좌우 풀백으로 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목차 |
[편집] 클럽 경력
[편집] 초기 경력
윌리엄 갈라스는 프랑스어: Clairefontaine에 있는 프랑스 축구 아카데미를 졸업하였다. 캉의 2부리그 팀에서 처음으로 프로 선수로서 뛰기 시작하였는데, 1996년에는 팀이 우승하는 데 공헌했다. 곧이어 1997년, 그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하였으며, 그곳에서 로버트 피레스 등과 함께 네 시즌을 뛰었다. 마르세유에서 뛰면서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기도 했으며, 2000년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첼시 FC와 경기를 갖기도 하였다.
[편집] 첼시
첼시의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2001년, 약 62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는, 갈라스를 데려왔다. 윌리엄 갈라스는 등번호 13을 선택했는데, 마르세유에 살던 집의 우편번호에 13이라는 숫자가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1] 라니에리 감독 밑에서, 갈라스는 센터-백으로 뛰면서, 마셀 데살리 등의 수비수와 호흡을 맞추었고, 나중에는 존 테리와 같이 뛰었다; 존 테리와 짝을 이루었을 때는, 16 경기 연속으로 단 한 점도 안 내준 적도 있었다. 그는 첼시에서 때때로 라이트-백으로 활약하였다. 윌리엄 갈라스가 첼시에 있는 동안 첼시는 국제 리그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윌리엄 갈라스는, 라니에리 감독을 뒤를 이어 첼시의 감독이 된 주제 무리뉴 감독 하에서 뛰면서, 첼시의 2년 연속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리그 컵 우승을 이끌어 냈다. 2004-05 시즌, 레프트-백 포지션이었던 웨인 브리지가 심한 부상을 당하자, 갈라스는 원래의 포지션에서 벗어난 포지션에서 뛰어야 했다. 첼시가 아틀레틱 빌바오로부터 800만 파운드를 주고 델 호르노를 데려오기는 했지만, 갈라스는 종종 왼쪽 풀백으로 뛰어야만 했다. 갈라스는 토트넘 핫스퍼 FC, 리버풀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기도 하였다. 토튼햄과의 경기에서 그가 인저리타임 경과 3분 (93분)에 넣은 25-야드짜리 결승골은 "첼시 TV"가 선정한 "갈라스 선수의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갈라스와 첼시와의 계약은 2007년 5월 종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갈라스는, 금액에 만족하지 못하여, 첼시와의 새 연장계약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유벤투스 FC와 AC 밀란 등에 관심있다고 밝혔다. [2] 첼시는 갈라스를 중요한 선수라고 보았기 때문에, 2006년 5월까지 그의 이적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2006년 월드컵이 끝난 후, 갈라스는 첼시의 프리-시즌 미국 투어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3] 월드컵 토너먼트 후 피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투어에 합류하지 않은 벌로, 팀은 팀에 새로 합류한 미하엘 발라크에게 13번 등번호를 부여하였다. 이 사건은 첼시에서의 그의 장래에 대해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열린 클럽 멤버쉽 데이에서, 그에 대한 반응은 여러 가지로 갈렸다. 일부 팬들은 그에게 격려를 보냈고, 일부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유럽 각지의 클럽들과 접촉이 있었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갈라스가 잉글랜드 밖의 클럽으로 이적하는 일은 쉬이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었다. 이탈리아 축구 스캔들 사건이 터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유벤투스나 밀란으로부터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유일하게 그에게 관심을 보인 클럽은 잉글랜드의 아스날 FC였다. 첼시는 네덜란드 출신의 수비수 칼리드 불라루즈와 계약을 하였고, 암묵적으로 갈라스 이적을 용인하였다. [4]
2006년 9월 1일, 갈라스는 아스날로 이적하였다. 애쉴리 콜이 첼시로 이적하는 거래에 낀 것이었다. [5] 아스날은 합계 500만 파운드£를 받았다. 조 콜-윌리엄 갈라스 맞교환이 첼시의 경영진인 피터 케니언(Pter Kenyon)에 의해 강제되었다는 것과 라이벌 팀인 첼시FC로의 이적이 성사되었다는 것에 대해, 주제 뮤리누 감독이 크게 화를 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이적 후, 첼시는, 갈라스가 이적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경기에서 의도적으로 실수를 하여 자책골을 넣을 것이라고 협박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6] 갈라스는 첼시의 주장을 부인하였다. [7] 예전에 갈라스를 마르세유로부터 첼시로 데려왔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믿을 수 없습니다. 신빙성이 없습니다. 저는 윌리엄 갈라스와 계약을 했고, 윌리엄 갈라스는 축구장에서만큼은 프로페셔널하게 일했습니다. 다만, 지난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PFA 최고 경영자 고든 테일러는 이 에피소드가 "나쁜 인상을 남겼을 뿐"이며, 첼시측의 발언은 "많이 에누리"해서 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편집] 아스날
윌리엄 갈라스는 아스날과 4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최근 은퇴한 데니스 베르캄프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2006년 아스날 공식 잡지에서의 인터뷰에서, 아스날의 감독 아르센 벵거는 보통 포워드가 달던 10번 등번호를 그에게 준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3번 등번호는 그에게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남아있는 등번호들을 제시했습니다. 등번호 10번을 수비수에게 부여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번호를 스트라이커에게 물려줬으면 데니스 베르캄프와 비교되어 주눅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데니스 베르캄프의 번호를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해 주저했었습니다만 - 특히 수비수에게 말이죠 - 종합적으로 보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갈라스는, 2006년 9월 9일 미들즈브러 FC와의 1-1로 비긴 홈 경기에서 레프트-백으로서 출장해, 첫 아스날FC 데뷔전을 치른다. 2006년 9월 23일에는 첫 골을 기록하였다. 2006년 11월 12일 리버풀 FC과 치른 경기에서도 한 골을 기록하였으며, 이 경기에서 아스날은 리버풀을 3-0으로 이겼다.
2007년 8월 9일 윌리엄 갈라스는 부주장 콜로 투레, 지우베르투 시우바와 같이 짝을 이루어 팀 주장에 임명됐다. 아스날 주장으로서의 첫 경기는 2007년 8월 12일 풀럼 FC와의 경기였다. 아스날은 이 경기에서 2-1로 이겼다[8]. 갈라스는 8월 19일 벌어진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사타구니 부상을 당했지만, 10월 20일 볼튼 원더러스와의 2-0으로 이긴 경기에는 복귀를 하였다.
[편집] 국제 경기 경력
갈라스는 프랑스 U-18 대표팀이 유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의 주역이었다. 그는 1997 FIFA 세계 유소년 챔피언십에 참가한 프랑스 유소년 대표팀에서 뛰기도 하였다.
그는 현재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정규 멤버이다. 200년 10월 유로 2004 예선전에서 프랑스가 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5-0으로 대파할 때 활약하였으며, 프랑스가 유로 2004 결승전까지 오르는 데 공헌을 하였다. 그는 2003년 컨페데레이션즈 컵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으며, 프랑스가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까지 진출하는데 힘이 되었다. 월드컵 종료 후,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을 매너 없다고 비판하였다. 프랑스가 포르투갈과 준결승전에서 만났을 때, 프랑스 대표팀은 포르투갈 선수들의 거칠고 매너 없는 플레이를 조심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9].
2006년 9월 6일 유로 2008 예선전에서, 갈라스는 국제 경기 5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한다. 프랑스 경기장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3-1로 이긴 경기였다.
[편집] 국제 경기 골 기록
# | 일자 | 장소 | 상대팀 | 경기결과 | 승/패 | 종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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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005년 8월 17일 | 프랑스 몽펠리에 | 코트디부아르 | 3-0 | 승 | 친선경기 |
2. | 2006년 8월 16일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2-1 | 승리 | 친선경기 |
[편집] 우승/수상 경력
[편집] 캉 팀
- 르 샹피오나 리그 두 챔피언십 우승 - 르 샹피오나 리그 두 1995-96 시즌
[편집] 첼시 팀
[편집] 아스날 팀
- 에미리트 컵 - 2007
- 암스테르담 토너먼트 - 2007
[편집] 주석
- ↑ Marseille is in the Bouches du Rhône département of France where all addresses begin with a 13
- ↑ "Gallas drops exit hint", 《스카이 스포츠》, 2006년 9월 5일.
- ↑ "William Gallas statement", 《첼시 FC》, 2006년 8월 1일. 2006년 9월 5일에 읽어봄.
- ↑ "Reaction: Mourinho delighted with energetic Essien", 《첼시 FC》, 2006년 8월 21일.
- ↑ "Cole moved after deadline",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 2006년 9월 2일. 2006년 9월 5일에 읽어봄.
- ↑ "Gallas 'issued own-goal threat'", 《BBC 스포트》, 2006년 9월 5일. 2006년 9월 5일에 읽어봄.
- ↑ "Gallas denies Chelsea claims", 《스카이 스포츠》, 2006년 9월 5일. 2006년 9월 5일에 읽어봄.
- ↑ "Gallas named captain as Wenger looks to older heads", 《Arsenal.com》, 2007년 8월 9일. 2007년 8월 9일에 읽어봄.
- ↑ William Gallas warns France to watch out for Portugal (2006년 7월 5일). 2006년 9월 7일에 읽어봄.
[편집] 바깥 고리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 분류가 있습니다: |
- (영어) 공식 웹사이트
- (프랑스어) William Gallas profile French Football Federation 공식 웹사이트에 있는 것.
- (영어) BBC profile
- (영어) FootballDatabase profile and stats
- (영어) 4thegame.com profile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2006년 FIFA 월드컵 준우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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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카엘 랑드로 | 2 장알랭 붐송 | 3 에릭 아비달 | 4 파트리크 비에라 | 5 윌리암 갈라스 | 6 클로드 마켈렐레 | 7 플로랑 말루다 | 8 비카슈 도라소 | 9 시드니 고부 | 10 지네딘 지단 | 11 실뱅 윌토르 | 12 티에리 앙리 | 13 미카엘 실베스트르 | 14 루이 사아 | 15 릴리앙 튀랑 | 16 파비앵 바르테즈 | 17 가엘 지베 | 18 알루 디아라 | 19 윌리 사뇰 | 20 다비드 트레제게 | 21 파스칼 심봉다 | 22 프랑크 리베리 | 23 그레고리 쿠페 | 감독 레이몽 도메네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