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사와라 나가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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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 나가토키(小笠原 長時, おがさわら ながとき 1514년 11월 9일 ~ 1583년 4월 17일)는 시나노의 센고쿠 다이묘이다. 시나노 오가사와라씨 도슈이고, 시나노 하야시성 성주이다.
[편집] 생애
에쇼 11년(1514년) 10월 23일, 오가사와라 나가무네의 장남로 태어난다. 다이에 6년(1526년) 11월 5일, 13세로 성인식을 한다. 가독을 이은 것은 덴분 10년(1541년)에 일이다. 아버지 나가무네가 출가 했을 때라 생각된다. 사실 이 해즈음부터 도슈로서 오가사와라군을 이끌었다.(아버지 나가무네가 사망한 때는 덴분 11년(1542년)이다.)
다케다 하루노부(다케다 신겐)이 시나노 공략을 개시하자, 반 다케다세력과 손을 잡고 하루노부의 시나노 공략에 저항하지만, 패한다. 덴분 17년(1548년) 2월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다케다군이 무라카미 요시키요에 패해 퇴각하자, 7월에 스와군으로 침공한다. 그리고, 시오지리고개로 진격해 다케다군과 싸우지만, 가신의 배신과 다케다측의 요격에 시오지리고개 전투에서 대패한다. 그리고, 하루노부에 의해 영지에서도 쫓겨나, 다이묘로서 오가사와라씨는 일시 멸망한다.
그 후, 나가토키는 무라카미 요시키요, 다음에는 우에스기 겐신을 의지한다. 그리고, 동족으로 있는 미요시 나가요시를 의지해 상경하고,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기마술 사범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에로쿠 6년(1564년) 미요시 나가요시가 병사하고, 에로쿠 7년(1565년)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암살되었다. 게다가 에로쿠 11년(1568년) 오다 노부나가의 상경전으로 미요시씨가 몰락했기 때문에 다시금 우에스기 겐신을 의기하게 된다.
덴쇼 6년(1578년) 겐신 사후 에치고를 떠나 유량한 끝에, 덴쇼 11년(1583년) 2월 25일, 아이즈(현재 후쿠시마 현)의 아시나씨의 밑에서 사거하다. 향년 70세. 전년에 덴쇼 10년(1582년)에 숙적 다케다씨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멸문되어, 나가토키의 셋째 아들 오가사와라 사다요시가 옛영토를 회복했다. 나가토키도 구령복귀를 준비하지만, 나가토키에 원한을 가진 가신에게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편집] 인물, 일화
- 무로마치 시대초기(남북조시대)부터 오가사와라가는 명문이라는 인식이 이상할 정도로 강했다. 게다가 나가토키는 무용만이라면 다케다 신겐 못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을 믿고 오만에 빠져서, 가신들의 의견을 그다지 듣지 않는다. 그래서, 시오지리고개 전투와 생애 마지막날까지 가신의 배신을 초래하고 말았다.
- 다케다 신겐을 주역으로한 소설, 드라마등에서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신겐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로 많이 나오는 무장이다.
[편집] 가계
아버지는 오가사와라 나가무네 이고, 어머니는 우라노 단쇼추의 딸이다. 아들로는 오가사와라 나가타카, 오가사와라 사다쓰구, 오가사와라 사다요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