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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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형(石鎭衡, 1877년 ~ 1946년)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기업인이다. 호는 반아(槃阿)이다.
[편집] 생애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의 화불법률학교를 졸업했다.
1904년 대한제국 군부의 군법국 주사에 임명되면서 관직에 들어섰고, 보성전문학교에서 법학을 강의하고 법관양성소 교관으로 근무하는 등 법률 전문가로서 중용되었다.
1913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설립된 호서은행 취체역(이사)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1920년 조선제사주식회사와 대동상회에 참여하고 경성상업회의소 특별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제인으로의 이력도 쌓았다.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탁되어 전라남도의 도 참여관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3·1 운동 이후 구성된 임시교육조사위원회에 이완용, 고원훈과 함께 조선인 위원 3인 중 한 사람으로 포함되는 등 총독부의 신임을 받았다. 1924년과 1926년 충남과 전남 도지사에 임명되었다.
1929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감사역을 맡았다. 요식업체 천향원과 양조업체 북선주조주식회사에서 취체역과 사장을 지내며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천향원은 서울의 '3대 요리집'으로 불리던 곳이다.[1]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혐의를 두고 조사[2],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수록함으로써 반민자로 인정했다.
[편집] 참고자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7년 12월). 〈석진형〉, 《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964~978쪽.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2월 1일). 〈석진형 : 총독부의 신임 두터웠던 절대 맹종파 (이명화)〉, 《친일파 99인 1》.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17.
[편집] 주석
- ↑ 《프레시안》 (2003.6.21) 〈장규식의 서울역사산책〉 피마골 풍물기행② - 10만석 재산 털어 지킨 문화재의 거리
- ↑ 《한국일보》 (2007.6.15) 진상규명위원회, '친일' 조사 대상 110명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