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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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제(高承濟, 1917년 2월 5일 ~ 1995년 12월 1일[1])은 한국의 경제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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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이다. 일본에 유학하여 1941년에 릿쿄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의 동양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약 4년 동안 동양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친일 행적을 남겼다. 최린이 회장을 맡고 있던 조선언론보국회에서 서기를 지내면서 《매일신보》에 〈영광에 지극한 우리들의 징병제도〉(1943)을 기고해 징병제를 선전하는 등 친일 논설이 다수 남아 있다.[2]
1945년부터 연희대학교와 고려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1952년에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54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장도 역임했다. 박사학위는 1960년에 서울대학교에서 받았다.
제1공화국 때부터 정부 정책의 자문역을 맡아오다가 1970년대에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에 임명되었다. 한양대학교 초대 행정대학원장, 한국경제학회 회장과 명예회장도 지냈으며, "한국 경제학의 텃밭을 일군 경제학계의 1세대"라는 평가가 있다.[3]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경제사이다. 저서로 《한국경제론》(1956), 《한국금융사연구》(1970). 《한국근대화론》(1976) 등이 있다. 말년에는 정약용 연구에 몰두하여 《다산을 찾아서》(1994)를 펴냈다. 이 책에는 "진정한 세계화는 자주적 민족의식을 투철히 하는데서 출발한다"는 지론이 담겨 있다. 1969년에 대학민국학술원상을 수상했고,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편집] 같이 보기
- 조선언론보국단
- 한국개발연구원
- 한국경제학회
[편집] 참고자료
- 고승제. 대한민국학술원. 2008년 6월 6일에 읽어봄.
[편집] 주석
- ↑ "학술원회원 고승제씨", 《조선일보》, 1995년 12월 2일, pp. 38면.
-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546~547쪽. ISBN 8995330724.
- ↑ 남대희. "경제학 텃밭일군 학계1세대 - 어제 타계한 고승제 박사", 《한국일보》, 1995년 12월 2일, pp.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