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구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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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구 칸, 훌라구 때로는훌레구라고도 부른다. (1217년 – 1265년 2월 8일, 차가타이/페르시아어:ہلاکو 아랍어:هولاكو; )는몽골의 통치자로 서남 아시아를 정복한 정복자이다. 칭기스 칸의 손자이며 몽케 칸, 쿠빌라이 칸의 형제 이다.
훌라구의 군대는 서쪽으로 정복활동을 벌여 페르시아을 정복하고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일 한국을 세웠다. 그의 치세에 당시 이슬람의 가장 큰 세 도시중 2개인 바그다드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가 정복당했고 남은 하나인 이집트의 카이로는 그의 침공으로 맘루크 왕조로의 권력이동이 있었다.
[편집] 생애
훌라구는 징기스 칸의 아들중의 하나인 톨루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인 소르칵타니 였다.
1251년 몽케 칸이 몽골족의 대칸으로 임명되었고 1255년 훌라구는 몽케의 명을 받들어 대군을 이끌고 서남 아시아의 이슬람국가들에 대한 정복에 나섰다. 그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스타심에게 몽골족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할 것을 강요했는데 아바스 칼리파가 거부했다. 그는 수십만의 몽골군을 이끌고 바그다드로 진격하여 1256년 12월 알라무트의 아사신 근거지를 파괴하고 거침없이 바그다드로 쳐들어갔다.
바그다드를 포위하자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자비를 구했으나 소용없었다. 1258년 2월 10일 훌라구는 이슬람군의 항복을 받았고 이슬람군이 무장해제함과 동시에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여 거의 8만명의 바그다드 이슬람교도가 학살당했고 칼리파 알 무스타심 역시 죽임을 당했다. 이로서 압바스 왕조는 멸망하고 말았다.
훌라구는 계속 서쪽으로 진격하였고 여러 기독교 군주들을 자신의 가신으로 세웠다. 안티오키아의 보에몽 4세, 아르메니아의 하이톤등 기독교군과 합세하여 1260년 시리아를 침공했다. 먼저 알레포가 정복도었고 곧이어 다마스쿠스를 공격하여 3월 1일 다마스쿠스도 함락당했다. 당시 기독교도들은 훌라구의 몽골군이 이슬람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여겼고 실제로 훌라구의 대장 키트부카는 기독교도였다.
시리아의 정복을 끝낸 뒤 훌라구는 이집트로 진격하려고 준비하였다. 그러나 1259년 말, 몽골의 대칸 몽케 칸이 죽자 훌라구는 카라코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키트부카에게 소수의 몽골기병을 남기고 철수하였다. 그 해 9월 키트부카와 기독교 제후들의 연합군과 이집트 맘루크군이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맞붙었다. 이 전투는 맘루크의 승리로 끝나고 키트부카는 전사하였다. 이로서 몽골군의 서진은 저지되었고 이집트의 정권은 바이바르스에게 넘어갔다. 일한국과 이슬람 의 국경은 티그리스 강으로 결정되었다.
훌라구는 쿠빌라이를 다음 대칸으로 인정하고 1262년 일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킵차크 한국의 베르케 칸과 전투를 벌였는데 베르케는 이슬람교로 개종한 칸으로 훌라구의 바그다드 함락에 대한 복수를 벼르고 있었다. 이는 몽골족 간에 벌어진 첫번째 전면전으로 몽골 제국의 분열의 시초가 되었다.
훌라구는 1265년 죽었고 아들 아바카 칸이 그의 뒤를 이었다.
전 임 없음 |
일한국의 칸 1256년 - 1265년 |
후 임 아바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