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봉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현기봉(玄基奉, 1855년 9월 4일 ~ ?)은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의 부호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아호는 성산(星山)이다.
목차 |
[편집] 생애
전라남도의 부호 가문에서 태어난 대지주였다. 1888년 구휼 활동에 나서서 불쌍한 백성을 구제했다는 기록이 있다.1891년 진사시에 급제했다.
영암군의 향교와 향약소에서 직책을 맡거나 학교를 세워 교장이 되는 등 지역 유지로 활동했다. 1906년에는 영암군민의장이 되었고, 1909년에는 목포부민의장을 역임했다.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뒤 이듬해 목포부의 참사로 임명되어 식민통치에 대한 자문 역할을 담당했고,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전라남도 지역에서 만세시위에 반대하는 강연을 한 사실이 있다.
만 80세이던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아들인 현준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1][2] 현준호의 3남 현영원이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의 아버지라 현정은에게는 증조부가 된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분야에 선정되었다. 두 목록에는 현준호도 함께 들어 있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 자료
- 현기봉(玄基奉) - 국사편찬위원회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3월 1일). 〈현준호 : 실력양성론자에서 친일파로 변신한 금융자본가 (박찬승)〉, 《친일파 99인 2》.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24.
[편집] 주석
- ↑ 성강현.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일요시사》, 2004년 3월 18일. 2008년 6월 20일에 읽어봄.
- ↑ 성강현.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일요시사》, 2004년 3월 18일. 2008년 6월 20일에 읽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