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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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 857년 - ?)은 신라 말기의 문장가,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혹은 해운(海雲)이다.
우리말 고문(古文)으로 된 천부경(天符經) 한문 번역본과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을 남겼다.
[편집] 생애
- 868년(경문왕 8년) 당나라 유학을 떠나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한지 7년만에 과거에 급제, 선주 율수현위(宣州 水縣尉)가 되고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史), 내공봉(內供奉)에 올라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 885년 귀국하여 시독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지서서감(知瑞書監)이 되었으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外職)을 자청, 태산(太山 : 지금의 전북태인)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편집] 저서
- 《금체시》
- 《계원필경(桂苑筆耕)》
- 《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
- 《잡시부》
- 《중산복궤집》
- 《오언칠언금체시》
-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 《부석존자존》
- 《법장화상전》
- 《석이성전》
[편집] 참고문헌
- 《최치원 신연구》, 당인핑 저/마중가 역/김복순 감수, 한림대학교 출판부, 2004년
- 한국의 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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