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린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린(崔麟, 일본식 이름: 佳山麟, 1878년 ~ 1958년?[1])은 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인사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 인사로 전향했다. 아호는 고우(古友)이며, 천도교 도호(道號)는 여암(如庵)이다.
목차 |
[편집] 생애
함경남도 함흥 출생이다.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다가 상경하여 개화파 청년들과 교유하던 중, 1902년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된 일심회 조직 사건으로 일본으로 잠시 피신했다. 개화파 역관인 오경석의 아들 오세창이 당시 일심회 사건에 함께 연루되었다.
1904년에는 황실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의 부립제일중학과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1910년 귀국했다. 일본 유학 중에 같은 황실유학생이었던 최남선, '이상헌'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던 천도교 교주 손병희를 만나 교류했고, 이후 천도교에 입교했다.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1918년부터 손병희와 오세창, 권동진 등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독립 운동의 방안을 논의하다가 1919년 3·1 운동을 구상했다. 그는 불교계의 한용운, 기독교계의 이승훈을 통해 두 종교 대표들을 참가시키고 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을 추천하는 등 기획 과정을 주도했으며, 독립선언서 낭독 모임 이후 곧바로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옥한 후에는 손병희 사망으로 구심점을 잃은 천도교가 내분 상태에 빠지자, 일본의 승인을 통한 자치론을 내세우며 신파를 주도했다.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자치운동 조직 연정회의 부활을 기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신간회의 구파와는 대립했다. 총독부와 밀착한 이러한 행보는 변절의 단초였는데, 결국 1934년에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고, 그해 일선융합과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세우는 한일 연합 친일 조직인 시중회를 조직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1937년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사장에 취임하여 내선일체를 설파했다.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단장,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회장을 맡으며 강연 활동 등으로 전쟁을 지원하는 극렬 친일 인사가 되었다.
광복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한국 전쟁 기간 중에 납북된 뒤 사망 시기가 알려져 있지 않다.
[편집] 사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하여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천도교의 두 부문에 들어 있다.
최린은 공개적이며 노골적으로 친일한 인물인데다 천도교 신자로서 김일성과 직접 교류한 박인진, 최동오, 김달현 등과는 대립하는 관계였기에, 북조선에서는 낮게 평가한다. 예를 들어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대표적인 민족 배반자로 언급되었다.[2] 북조선에는 역시 친일파로 널리 알려진 이광수의 묘도 조성되어 있을 정도지만[3] 최린의 최후나 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자료
- 정운현 (1999년 7월 28일). 〈짧은 '항일', 긴 '친일' - 민족대표 33인 중 1인 최린〉,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서울: 개마고원. ISBN 9788985548465.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5년 7월 1일). 〈최린 : 반민특위 법정에 선 독립선언의 주역 (김경택)〉, 《친일파 99인 (3)》. 서울: 돌베개. ISBN 8971990139.
- 정운현. ""나를 광화문 네거리서 찢어 죽여라" - 반민특위 법정서 참회하는 '민족대표'", 《오마이뉴스》, 2004년 8월 22일. 2008년 2월 17일에 읽어봄.
- 김정인, 친일과 변절의 논리 - 민족의 '혜성'으로 떠오르다, 《한국역사연구회 웹진》 제8호
[편집] 주석
- ↑ 김정인, 위의 글 중 "최린은 1958년 12월 말 평북 선천의 요양소에서 여든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 ↑ 김일성 (1992). "제1부 항일혁명편, 제15장 지하전선의 확대", 세기와 더불어.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 ↑ 신준영. ""누워서도 남쪽하늘만 보십니다" - 평양시 신미리 재북통협 특설묘지", 《민족21》, 2002년 7월 1일. 2008년 5월 15일에 읽어봄.
|
|
---|---|
그리스도교 |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홍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
천도교 |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최린 |
불교 | 한용운 백용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