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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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보 | |
지정 번호 | 국보 287호 |
소재지 | 부여국립박물관 |
제작 시기 | 백제 7세기 초 |
1996년 5월 30일 지정 |
백제금동대향로(한자: 百濟金銅大香盧)는 1993년 12월 23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국보 287호로 지정되었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초에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할 수 있다.
목차 |
[편집] 금동대향로의 세계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말기부터 악취를 없애고 부정을 쫒기위해 향로를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백제 금동대향로는 한나라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아 백제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백제의 것과 같은 대형 향로가 없으며, 한나라 때와 같은 금동 제품이 남조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남조시대 유물들 중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비슷한 것이 확인되었다.
[편집] 발굴 상황
백제금동대향로는 원래 능산리 고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을 건설하던 곳에서 발견되었다. 주차장 공사가 임박한 시점에 물웅덩이에서 발견된 것이다. 발견 당시 백제금동대향로는 진흙 속에 있었고, 바닥에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이 발굴되었는데, 발굴단은 이 섬유 조각이 백제금동대향로를 감쌌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대향로가 오랜 세월에도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로 진흙과 범벅되어 진공 상태에서 보관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1]
1995년의 발굴 조사로 대향로가 발견된 일대가 백제 시대 왕실 절터였음이 입증되었다. 발굴된 목탑 흔적에서 발견된 사리감에서 "백제 창왕 13년 (567년)에 정해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학계는 이 점에 주목하여 대향로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의식용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신물로 추정하고 있다.[2]
[편집] 참고 자료 및 주석
[편집] 주석
[편집] 참고 자료
- 《HISTERICA 한국사》 고구려+백제,히스토리카한국사 편찬위원회지음, 이끌리오
- 《역사스페셜》 (원작 KBS 역사스페셜), 정종목 글, (서울, 2000년, 효형출판)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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