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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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洪秉箕, 1869년 11월 5일 ~ 1949년 1월 2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에서 받은 도호는 인암(仁菴)이다.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동학에 입문하여,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박인호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 망명해 있던 손병희로부터 진보회를 창설하여 머리를 자르게 하라는 지시를 직접 받고 갑진개화운동에도 참가했다. 1919년 손병희가 주도한 3·1 운동에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측 대표로 참가했으며,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했다.
손병희 사망 이후 천도교에는 최린의 신파와 이에 대항하는 구파 외에 소장파를 중심으로 반일 항쟁을 기도하는 파벌이 생겨나 1922년 경성부에서 고려혁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홍병기는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가 만주로 망명했다. 1926년 지린에서 최동희, 김봉국 등 천도교 혁신파가 정의부와 연합하여 양기탁을 위원장으로 한 고려혁명당을 창당할 때 고문으로 참가했다가 검거되어 또다시 복역했다.
[편집] 참고자료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 홍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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