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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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우 (1725년~1799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편집] 생애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조 시절 1739년에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된 후 1741년 대과에 급제한 노론이였다. 뛰어난 두뇌와 판단력으로 영조의 총애를 받아 1762년에 동부승지를 지낸 후 1763년에 좌찬성에 1765년에 좌의정에 올랐다. 하지만 노론 벽파와 시파의 대신들이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장태우를 거짓 고변하여 제주도에 유배보내졌고 영조 사망 후 정조가 보위에 오르자 1791년 유배지에서 풀려나고 좌의정으로 복직 후 영의정으로 올랐으나 수많은 노론 세력이 정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 역시 정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와의 교역 문제를 성사시키고 자신을 유배보낸 수많은 중신들을 고변하여 유배보냈다. 또한 정조의 장자인 문효세자의 스승으로 우빈객에도 오른 적이 있었다. 1799년에 나이 74세로 고향인 포항에서 죽었다.
[편집] 사후
장태우의 집안인 인동장씨 집안이 그를 추모하는 장태우 선생 추모비를 경상북도 포항에 그 비를 올려 그를 오래 기렸다.
[편집] 가족
- 아버지 장익태
- 어머니 권씨
- 부인 김씨
- 1남 장유수
- 2남 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