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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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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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 1968년 2월 24일 | |
태어난 곳 | 한성부 |
복무 | 일제 강점기,대한민국 |
복무 기간 | 1932년 ~ 1961년 |
최종 계급 | 대한민국 육군 중장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태평양 전쟁,한국 전쟁 |
원용덕(元容德. 1908년 ~ 1968년 2월 24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제1공화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편집] 생애
1908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강릉시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의사로 일하다가 1932년 만주국 군대의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만주군관학교 교의(校醫)를 지내기도 했으며, 광복 당시 계급은 중교(中校)였다. 대한민국 국군의 중령에 해당한다.
광복 후 월남하여 1945년 12월 5일 미군정이 군사영어학교를 만들 당시 이응준, 조병옥과 함께 미군정으로부터 생도 모집을 위탁받게 되어 자신은 부교장에 취임했다. 1946년 조선국방경비대 초대 사령관, 조선경비사관학교 교장, 1953년 초대 헌병사령관 등으로 국군의 창군 및 초기 형성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박정희, 정일권, 이주일 등이 속한 만주군 인맥에서 가장 연장자이며 상급자였다.
원용덕은 제1공화국에서 벌어진 부산 정치 파동 등 각종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여 김창룡과 함께 대표적인 '정치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전쟁 중 있었던 이승만의 기습적인 반공포로 석방 사건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정치적 받침대였던 이승만이 하야한 뒤, 6년 전 있었던 불온문서 투입 사건과 김성주 살해 사건의 주모자로 구속되어 이듬해 파면 및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계급은 중장이었다. 그는 징역형을 다 채우지 않고 특사로 사면되었다가 1968년 자연사했다.
만주국 군대에서 장교로 장기간 근무한 경력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자료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4년 3월 1일). 〈원용덕 : 이승만의 오른팔이 된 일제 만주국 군의 (임대식)〉, 《청산하지 못한 역사 1》. 서울: 청년사. ISBN 9788972783121.
- 강준만 (2006년 11월 13일).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서울: 인물과사상사, 196쪽. ISBN 8959060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