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오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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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오토야(일본어: 山口 二矢 1943년 2월 22일 - 1960년 11월 2일)는 일본의 우익테러리스트이다. 1960년 사회당위원장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연설중에 칼로 찔러 살해하고 스스로도 자살하였다.
도호쿠 제국대학 출신으로 육상자위대원으로 엄격한 아버지 휘하에서 성장하였다. 다마가와 학원 고등학원고등부에 진학하나, 1959년 만 16세의 나이로 아카오 빈이 이끄는 대일본애국당에 입당하여 다마가와 학원 고등부를 퇴학한다. 사건당시에는 다이토문화대학의 청강생 신분이었다. 또한 사건 1개월 전에 대일본애국당을 탈당했다.
1960년 10월 12일 야마구치는 히비야 공회당에서 연설중이던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칼로 찔러,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야마구치는 당시 만 17세로 소년법에 의해 실명비공개 대상이었으나, 정치인 암살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실명이 공표되었다. 아사누마 살해당시 야마구치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유서격의 문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 아사누마 이네지로는 일본의 적화를 꿈꾸고 있다. 나는 너 개인에게 원한은 없으나, 사회당의 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로서 책임과, 방중시의 폭언과 국회난입등의 직접적 선동자로서 책임을 물어, 너를 용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나는 너에게 천벌을 내린다. 황기 이천육백이십년십월십이일 야마구치 오토야
야마구치는 11월 2일 도쿄 소년감별소의 개실에서 지급된 치약으로 벽에 七生報国 天皇陛下万才(칠생보국 천황폐하만세)라고 쓴 뒤, 목을 메 자살, 우익단체는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는등, 영웅시하였다. 소설가 사와키 고타로에 따르면, 아사누마 위원장 이외에 자민당 실력자인 고노 이치로 등 다른 정치인도 테러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대동아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언설을 한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등 황족도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