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시-아닷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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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시아닷 1세(1813~1791)는 유명하게 되었을 때 북 메소포타미아에 거대한 왕국을 조각해 내었다. 그의 아버지 일라-캅카바는 마리와 경계한 왕국을 다스렸고 아모리트였다. 그의 아버지의 임종 시 왕국은 다른 형제에게 상속되어 그는 자신의 왕국을 출발점에서 건설하게 버려두었다.
그는 처음 쉐크나를 정복하였고 도시를 슈바트 엔릴로 개명하였는데 그곳의 현재 이름은 텔라일란이다. 그는 그 후 티그리스의 왼쪽 재방에 에칼라툼 요새를 장악하였다. 이것은 두 번째 시도에서 달성되었다. 첫 시도는 실패하였고 그 후 샴시아닷은 바빌론으로 달아났다. 결국 그는 돌아왔고 성공적이였다. 이 정복은 그가 아수르 도시국가를 조정 가능하게 하였는데 그곳은 아나톨리아와 크게 교역하는 번영하는 도시였다. 그의 그이 장남 이쉬메-다간 1세을 에칼라툼의 왕좌에 앉히고 그의 확장을 계속하였다.
다음 목표는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의 카라반 길을 지배하던 도시 마리 였다. 마리의 왕 약둔림은 그 자신의 부하에 의해 암살되었는데 아마도 샴시아닷의 명령에 의한 것이였다. 샴시아닷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리를 점령하였다. 왕좌의 상속자 짐리림은 고대 얌카드 였던 알레포로 도망쳐야 했다. 여기에 그는 둘째 아들 야스마-아닷을 왕좌에 두고 슈바트 엔릴로 돌아왔다. 마리의 복속과 함께 그는 큰 제국을 조정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상부 전체를 다스렸다. 비문에는 샴시아닷이 지중해 해변에 승리의 비석을 세위 자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도 정복에 어떤 시도라기 보다는 짧은 원정이였다.
[편집] 같이보기
- 바빌론의 함무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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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텐트에 살던 왕 | 이쿠눔·투디야·아다무·얀기·슐라무·하르하루·만다루·임수·하르수·디다누·하나·주아부· 누아부·아바주·벨루·아자라·우쉬피아 |
왕의 아버지였던 왕 | 아피아샬·할레·사마니·일루-메르·약메시·약메니·야즈쿠르-엘·일라-갑가바·아미누 |
유래도시가 파괴된 왕 | 술릴리·킥키아·아키야·푸주르-아슈르 1세·샬림-아헤·일루슈마 |
고아시리아 왕 | 에리슘 1세·이쿠눔·사르곤 1세·푸주르-아슈르 2세·나람-수엔·에리슘 2세·샴시-아닷 1세·이쉬메-다간 1세·뭇-아쉬쿠르·리무쉬·이시눔
무정부 7인의 찬탈자: 아수르-두굴·아수르-아플라-이디·나시르-신·신-나미르·입키-이쉬타르·아다드-살룰루·아다시 벨루-바니·리바이아·샤르마-아닷 1세·입타르-신·바자이아·룰라이아·슈-닌우아·샤르마-아닷 2세·에리슘 3세·샴시-아닷 2세·이쉬메-다간 2세·샴시-아닷 3세·아슈르-니라리 1세·푸주르-아슈르 3세·엔릴-나시르 1세·누르-이리·아슈르-샤두니·아슈르-라비 1세·아슈르-나딘-아헤 1세·엔릴-나시르 2세·아슈르-니라리 2세·아슈르-벨-니셰슈·아슈르-림-니셰슈·아슈르-나딘-아헤 2세 |
중기 아시리아 제국 | 에리바-아다드·아슈르-우발리트·엔릴-니라리·아릭-덴-이리·아다드-니라리·샬만에세르 1세·투쿨티-닌우르타 1세·아슈르-나딘-아플리·아슈르-니라리 3세·엔릴-쿠두리-우수르·닌우르타-아팔-에쿠르·아슈르-단 1세·닌우르타-투쿨티-아슈르·무타킬-누스쿠·아슈르-레쉬-이시 1세·티그라트-필레세르 1세·아샤리드-아팔-에쿠르·아슈르-벨-칼라·에리바-아다드 2세·샴시-아다드 4세·아슈르-나시르-팔 1세·샬만에세르 2세·아슈르-니라리 4세·아슈르-라비 2세·아슈르-레시-이시 2세·티그라트-필레세르 2세· 아슈르-단 2세 |
신 아시리아 제국 | 아다드-니라리 2세·투쿨티-닌우르타 2세·아슈르나시르팔 2세·샬만에세르 3세·샴시-아다드 5세·샤무-라마트·아다드-니라리 3세·샬만에세르 4세·아슈르-단 3세·아슈르-니라리 5세·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샬만에세르 5세·사르곤 2세·센나케립·에사르하돈·아슈르바니팔·아슈르-에틸-이라니·신-슈무-리시르·신-샤르-이쉬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