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르 공작 클로드 루이 엑토르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클로드 루이 엑토르 드 빌라르,마르티크 공작, 빌라르 후작 겸 공작, 멜룬의 자작(Claude Louis Hector de Villars, Prince de Martigues, Marquis and Duc de Villars and Vicomte de Melun, 1653년 5월 8일 - 1734년 6월 17일)는 프랑스 루이 14세시대 때의 마지막 위대한 장군이며, 프랑스 군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령관 중 한명이고, 오직 단 6명의 원수만이 받은 프랑스 대원수 중 1명이다.
[편집] 초기생애
빌라르는 물랭(프랑스 알리에르 지방)의 귀족이지만 가난하고 눈에 띄지 않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1671년 그는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군단에 배치되었다. 그의 나이 20살때 프랑스-네델란드 전쟁기간 중 벌어진 1673년 마스티리흐트 공성전과 그 다음해에 벌어진 피의 세네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내 1년뒤 기병연대 연대장으로 승진하였다.
하지만 빌라르의 다음 승진은 튀렌, 대 콩데 와 뤽상부르 휘하에서 훌륭하게 근무하고,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당시 강력한 세력을 가진 루부아와 대립했기 때문이기에 빌라르가 마침내 육군 원수가 된것은 1687년이었다.
네델란드 전쟁의 휴식기간 사이에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이 결성되었고, 빌라르는
빌라르는 1690년 프랑스로 돌아와 플랑드르에 있던 프랑스 군대와 기병의 지휘권을 맡았으나, 그러나 얼마안가 대동맹 전쟁이 끝나가자 비엔나의 대사로써 가게 되었다.
[편집]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빌라르가 지휘한 전투인 처음 프리틀링겐 전투(1702년), 회흐슈테트 전투(1703년), 마지막으로 드냉 전투(1712년)로 통해 그의 명성은 불멸이 되었다.
이 문서는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