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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 - 위키백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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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국립 518 묘지(구묘역)
광주의 국립 518 묘지(구묘역)

5∙18 광주 민주화 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은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사이에, 전라남도 광주(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시민들이 신군부와 계엄군에 맞서 군부퇴진과, 계엄령 철폐, 체포된 민주 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였던 무력 항쟁이다. "광주민주화운동", "광주학살", "광주민중항쟁", "광주항쟁", "5·18" 라고 부르기도 하며, 비판적 시각에서는 "광주사태"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목차

[편집] 발생 배경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김재규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이후 유신 체제는 막을 내렸으나, 그 해 12월 12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 본부장 전두환(국군 보안사령관)이 계엄사령관 정승화(육군 참모총장)를 체포해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국민들의 민주 정권 수립 요구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편집] 전개

[편집] 전체 개요

1980년 5월 16일에는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 10만여 명이 모여 서울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5월 17일 전두환의 압력으로 개최된 비상국무회의는 비상계엄령을 내리도록 의결했다.

자정이후 서울 이외의 주요도시로 비상계엄령이 확대되었고 광주에 공수부대 병력이 도착한다.

비상계엄의 소식을 들은 대학생 100여명이 전남대 교문 앞에 모여 시위를 했다. 조선대학교 및 전남대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7 공수여단의 33대대와 35대대는 ‘화려한 휴가’라는 암호명의 작전에 따라 주둔지 경비를 위해 일부 병력을 대학 구내에 남겨놓고 금남로로 이동하여 계엄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대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학생들은 반발하며 광주 도심으로 옮겨가 시위를 계속하였으나 계엄군이 곤봉과 대검으로 학생들과 일반시민을 가리지 않고 살상했다.이에 분노한 광주의 일반시민까지 학생들의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20일에는 택시 운전사들의 차량 시위가 이어지며 시위대의 규모가 20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수세에 몰린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20일 밤 광주역,21일 낮 당시 전남도청앞)를 시작했으나,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민주화 요구 시위를, 언론들이 신군부의 거짓주장에 영합해 '불순 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보도한데 격분한 시위대는 광주MBC 방송국에 불을 지르고, 광주 시청을 점거했다. 또한 21일에는 예비군 부대의 무기고를 열어 총을 들고 무장하면서 계엄군에 대항한 시민군이 결성되었다. 시민군은 전남도청건물안 계엄군 병력과 교전을 한후 계엄군병력이 광주시 외곽으로 퇴각한후에 전라남도 도청을 점령했다. 계엄군에 의해 외부와의 통신과 교통이 차단된 상황에서 이들은 계속해서 계엄의 해제와 민주화요구 인사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민군대표를 조직하여 계엄군과 협상에 나서는 한편, 시민군 자체적으로 도시의 치안을 담당했다. 무정부상태였던 이 기간동안 광주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켜나갔으며 대치 상태는 26일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일부 지식인들은 광주민주항쟁당시 광주를 시민들의 자치가 실시된 파리 코뮌 당시의 파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27일 새벽 군인 25,000명을 투입한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었다. 광주 시내로 들어온 계엄군은 27일 새벽, 끝까지 남아 항전하던 시민군을 대부분 살해하고 전라남도 도청을 점령하면서 진압 작전을 마무리했다.


[편집] 날짜별 상세 일지

5월 17일 토요일
  • 21시 40분 - 비상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의결
  • 23시 00분 - 민주인사, 복적생, 학생운동 지도부 등 예비 검속 실시
  • 24시 00분 - 광주 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7 공수여단 33대대, 35대대 등). 전남대에 주둔한 계엄군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까지도 잡아들여 폭행.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시신은 학교 안에 암매장되었다.
5월 18일 일요일
  • 09시 40분 -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생 50여명이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 당함.
  • 10시 00분 - 전남대학교 주둔 계엄군을 상대로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임
  • 10시 15분 - 계엄군(공수부대원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항위 시위 진압.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첫번째 부상자 발생)
  • 10시 20분 -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
  • 15시 40분 - 금남로 유동3거리에서 계엄군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 광주 공용터미널에서 청각/언어장애인인 김경철씨 계엄군에게 전신 구타당함.
  • 19시 02분 - 계엄사령부, 통금 시간을 저녁 9시로 당긴다고 발표.
5월 19일 월요일
  • 03시 00분 - 11 공수여단이 증원군으로 광주 도착.(김경철씨 병원에서 사망 - 최초의 희생자)
  • 09시 30분 -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누문동 파출소 방화
  • 10시 00분 - 시민들 수가 점차 불어나면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11공수여단 약 천여명이 강경 진압을 강행하였고, 3~4명이 한 조가 되어 골목마다 누비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행.
  • 14시 40분 - 조선대학교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무리한 진압작전 전개
  • 15시 00분 -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회의를 갖고 시위 진압을 완화해달라고 계엄사령부 건의
  • 16시 30분 - 게림 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 고등학생 김영찬이 총격 부상을 당함(최초의 실탄 사격)
  • 20:00 - 시민들이 시위대 합류. 수 만명이 "전두환 타도"를 외침.
5월 20일 화요일
  • 08시 00분 - 고등학교 휴교조치 발령.
  • 10시 20분 - 가톨릭 센터 앞에서 남녀 30여명이 속옷만 입은 채 마구잡이 구타 당함. 공수부대와 시민 사이에 공방전 계속.
  • 18시 40분 - 택시 및 버스 200여대가 금남로에서 도청을 향해 차량 경적 시위.
  • 20시 10분 - 시위대, 도청으로 이동. 금남로, 충장로 등에서 공수부대 및 경찰과 대치
  • 21시 05분 - 노동청 쪽에서 시위대 버스가 경찰 저지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4명 사망
  • 21시 50분 -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보도한 광주MBC 방화
  • 23시 00분 -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 발포. 시민 2명 사망
5월 21일 수요일
  • 00시 35분 : 노동청 방면에서 군중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 전개
  • 02시 18분 : 시외전화 두절
  • 04시 00분 :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사망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에 등장
  • 04시 30분 : 광주KBS건물 방화
  • 08시 00분 : 시위대,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20사단 병력과 충돌
  • 10시 15분 : 도청 앞,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을 맨 앞으로 배치함. 당시 광주 시내에 출동한 공수부대에는 실탄이 많지 않았음.
  • 10시 19분 : 광주세무서건물 전소
  • 11시 10분 : 대형 헬기가 도청광장에 도착.
  • 12시 59분 :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 13시 00분 :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시작됨.
  • 13시 20분 : 청년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계속 쓰러짐
  • 14시 15분 : 도지사, 경찰헬기에서 시위해산 종용하는 설득 방송
  • 14시 35분 : 시민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 14시 40분 : 시민들이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 입수
  • 15시 48분 : 공수부대원들이 주요빌딩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
  • 16시 00분 : 화순, 나주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 16시 43분 : 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M2 중기관총 2대 설치
  • 17시 30분 :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와 광주교도소로 철수
5월 22일 목요일
  • 09시 00분 :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 10시 30분 : 군용헬기 공중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 살포
  • 11시 25분 :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 12시 00분 :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 13시 30분 : 시민수습위원회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의 수습안 전달
  • 15시 58분 :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 개최
  • 17시 18분 : 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 17시 40분 : 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 21시 30분 : 박충훈 신임 국무총리, "광주는 치안 부재상태"라고 방송
5월 23일 금요일
  • 08시 00분 :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 10시 00분 :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서 집회
  • 10시 15분 :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 11시 45분 : 도청과 광장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 13시 00분 :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 15시 00분 :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
  • 19시 40분 : 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에 도착
5월 24일 토요일
  • 13시 20분 : 공수부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 14시 20분 :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투교육사령부 부대 사이에 오인 총격전 발생
  • 14시 50분 :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 일요일
  • 11시 00분 : 김수환 추기경이 메시지와 함께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원 전달
  • 15시 00분 :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7시 00분 :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
  • 21시 10분 :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등 논의
5월 26일 월요일
  • 05시 20분 : 계엄군,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 08시 00분 :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농성동에서 죽음의 행진 감행
  • 10시 00분 :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4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 15시 00분 :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7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 19시 10분 :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 조치 시킴.
  • 24시 00분 : 시내전화 일제히 두절
5월 27일 화요일
  • 03시 00분 :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
  • 04시 00분 : 도청 주변 완전 포위, 금남로에서 시가전 전개
  • 04시 10분 : 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 05시 10분 : 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
  • 06시 00분 : 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 방송
  • 07시 00분 : 공수부대, 20사단 병력에 도청 인계
  • 08시 50분 : 시내전화 통화 재개

[편집] 광주 오적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당시 사건 발생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거론되는 인물 5명은 광주 5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 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
  • 정호용(당시 공수특전사령관)
  • 노태우(당시 수경사령관)
  • 박준병(당시 20사단장)
  • 이희성(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다음 2명을 포함하여 광주 7적이라는 명칭도 있다.

  • 최규하(당시 대통령)
  • 존 위컴(John Wickam,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으로 당시 미국은 전두환의 신군부 및 광주학살을 묵인했다.)

[편집] 희생자

훗날 정부 발표기준으로 계엄군의 광주민주화운동진압으로 인한 인명피해자는 피살자 191명 부상자는 852명이었다.

[편집] 사건 이후

광주 민주화 운동은 끝내 신군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 당했지만,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1987년 6월항쟁 등) 신군부의 무력 진압에 미국이 광주민주화운동 탄압을 묵인하여 협력한 사실이 알려짐으로서 종래의 대미관과 한미관계에 대한 인식도 재고되었다. 전두환의 군사독재정권은 이 사건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불순 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조작하였으나 1988년 5공청문회를 거치고 제6공화국이 출범된 후인 1995년 12월 21일 국회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고, 진압 과정에서 죽거나 부상 당한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및 보상을 위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군사정권의 비 민주성과 국가폭력에 대항한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받았다. 일부 탈북자들은 당시 광주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의 평소 성향과 더불어 제시된 증거/증언을 볼 때 그 주장의 신빙성이 없다.

[편집] 관련 판례

광주 민주화 운동의 관련자를 숨겨 준 천주교 신부에 대해 정당행위를 부정, 범인은닉죄로 처벌한 판례가 있다. 이회창 대법관이 참여한 재판이며, 한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라는 황인철 변호사 등이 변호한 사건이다.[1][2]

[편집] 주석과 참고자료

  1. 대법원 1983.3.8. 선고 82도3248 판결 【국가보안법위반·현주건조물방화치상·현주건조물방화예비·계엄법위반·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특수공무집행방해·범인은닉·범인도피】
  2. 이회창 총재가 참여한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대법원 상고심 판결문 (요약)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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