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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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군(玄風郡, 1895년 - 1914년)은 조선말기 및 일제강점기의 대구부(大邱府, 1895년 - 1896년) 및 경상북도(慶尙北道, 1896년 - )의 하위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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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편집] 신라 시대
추량화현(推良火縣) 또는 삼량화현(三良火縣)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현효(玄驍)로 개칭되어 화왕군(火王郡)에 속하였다.
[편집] 고려 시대
포산현(苞山縣, 포산은 비슬산의 일명)으로 불리어지다가, 1018년(현종 9년) 밀성군(密城郡)에 속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년)에는 감무를 설치하였고 구지산부곡(仇知山部曲)을 병합하였다.
[편집] 조선 시대
1419년(세종 원년) 현풍현으로 개칭되었고 현재 현풍면인 현내면(縣內), 서부면(西部), 마산면(馬山), 모로촌면(牟老村), 현재의 논공읍 일부인 논공면(論工), 걸산면(乞山), 현재의 유가면인 유가면(瑜伽), 동부면(東部), 우만면(雲滿), 말역촌면(末亦村), 현재의 구지면인 구지면(求智), 묘동면(沙洞), 오설면(烏舌), 산전면(山田面), 현재의 고령군 개진면 일부인 진촌면(津村), 우곡면 일부인 답곡면(沓谷), 왕지면(旺旨) 이상 17개 면을 관할하고 현감을 두었다.
[편집] 조선 말기
1895년(고종 32년) 현재의 논공읍 일부인 성주목 노장면(蘆長)을 편입하여, 현풍현을 군으로 승격하여 대구부에 속하였다가, 1914년 현풍군 진촌면을 고령군 개진면에, 답곡면, 왕지면을 고령군 우곡면에 편입하고 대구부의 외곽지와 현풍군을 폐합하여 달성군이 되었다.
[편집] 지명의 변천
[편집] 구지
신라 시대 구지산부곡(仇知山部曲)이 고려 때 현풍현에 병합된 후 조선 때 구지(求智)로 개칭되었다.
[편집] 현풍
「玄豊」이 「玄風」으로 개칭된 것은 밀성군 속령 당시 아전들이 명을 받아 본 현에 나와 일을 할 때 그들은 백성을 속이고 사욕에 눈이 어두워 주민들은 도탄에 빠지게 되고 전답은 거칠어지고 민심은 걷잡을 수 없었다. 이에 관찰사의 상소로 조정에 알려지니 나라에서 「玄豊」을 「玄風」으로 개칭토록 하였다. 관리의 교화가 미치는 곳마다 바람처럼 도의심이 확산되어 선화되라는 뜻에서 "風"자로 개칭한 것이라고 한다.
[편집] 연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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