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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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리(崔萬理, ?~1445년)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반대하였다고 알려진 유학자이다. 해주 최씨의 시조인 해동공자 최충(崔沖)의 12대 후손으로, 최하(崔荷)의 아들이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이다.
1419년(세종 원년) 생원으로 증광문과(增廣文科) 을과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집현전 정7품 박사를 거쳤고, 1427년 교리(校理)로서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였고, 1437년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고, 1439년에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집현전에 돌아와 부제학이 되었다.
노년에는 통정대부에까지 올랐으며,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세종실록》 1444년 2월 20일 합소(연명 상소)에서 한글 창제를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상소가 최만리 한 사람이 올린 상소도 아니거니와, 딱히 한글 창제 자체를 반대한 상소이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