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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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라틴어: Societas Iesu)는 로마 가톨릭의 수도회이다. 1534년 8월 15일에 군인 출신 로마 가톨릭 수사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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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예수회 설립
에스파냐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이냐시오 로욜라는 군복무 중 중상을 입고 오랜 병상 생활을 하던 중, 중세 가톨릭 영성가인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등의 기독교 서적을 탐독하면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였다.[1] 신학을 공부한 그는 1534년 8월 15일 6명의 동료들과 함께 가난,[2] 순결, 순종, 순례와 영혼 구원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고 수도 단체를 설립하였다. 당시 예수회 설립에 참여한 6명 중 한 사람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프란시스 하비에르 신부는 1549년 유럽 교회 역사 최초로 일본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1540년 로마에서 교황 바오로 3세를 알현한 그는 이 수도 단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바오로 3세는 '예수회'라는 이름을 내려 이 수도회를 승인하였다.
[편집] 예수회의 특징
예수회는 전통적인 수도회가 내세우는 서원인 청빈, 순결, 순종 외에 영혼의 구원과 믿음의 전파를 위해 내려지는 교황의 명령을 지체 없이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항목이 덧붙여 있다. 이것은 예수회만의 특징으로 이와 같은 규정은 대응 종교 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수도회는 전통적인 수도회의 모습 중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하게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수도원의 외향적인 모습보다는 인적·내적인 관계를 더 중시하며, 수도자의 복장도 갖추지 않는다. 수도원의 전통적인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되 전도 활동이나 형식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자유롭게 변형을 하고 있다.
[편집] 예수회의 선교 역사
예수회는 아직 개신교의 세력이 미치지 않은 중국과 중·남미에서 활발한 해외선교를 하였고, 유럽 교회 역사 최초로 일본에서 전도하였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되,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Pax Christ'(주님의 평화) 등의 라틴어 전례용어와 사제가 제단쪽으로 돌아서서 미사를 집전하는 전례양식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례방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예전 개혁에 따라 현지용어로 미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대부분 논리학, 라틴어, 법학 등 학식이 풍부한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에, 학교 설립 등의 교육 사업에도 업적을 남겼다. 미국의 조지타운대학교, 대한민국의 서강대학교 등이 예수회 소속의 로마 가톨릭계 대학교이다.
[편집] 양성 과정
- 지원기
- 수련기
- 철학기
- 중간실습기
- 신학기
- 특수연학과 제3수련기
[편집] 주석
- ↑ 최인호의 최장기 연재소설 《가족》에 따르면, 로욜라는 병상에서 기독교 서적을 탐독하면서, 열정적으로 살다 간 예수 청년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불공정한 사회로 인한 비자발적 가난이 아닌, 스스로 가난의 길을 택하는 청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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