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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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종(1562년~1633년)은 박충원의 증손자로 조선 시대의 영의정을 지냈다.[1]
규정공 박현의 후세로서, 규정공파에 속한다. 박승조, 박승황 두 동생이 있었다. 자는 효백, 호는 퇴우당이다.
1585년 2등으로 과거에 급제 진사가 되었다. 다음해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 1589년 봉교, 이어 지제교 병조 정랑을 지냈고 1600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9세 때 연암 박지원에게 글을 배워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시집 《건연집》을 발간하여 조선의 시문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평소 박승종은 중국의 신 문물을 받아 실학의 대가를 이루었고 탁상공론과 같은 성리학을 비판하여 현실적 학문을 추구하였다.
[편집] 참고 자료
- ↑ 〈광해 187권, 15년( 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3월 14일 갑진 4번째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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