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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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捨姬公主 혹은 鉢里公主)는 바리공주 설화에 전해져 내려오는 무당의 조상이다.
[편집] 무속에서의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전해 내려온다. 바리공주는 설화라기보다는 무당이 굿을 할때 사설을 하게 되는데, 이는 유래를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구굿, 즉 해원 굿의 한마당으로 흔히 쓰인다. 오구굿이 시작되어 제일 먼저 오구풀이 마당이 시작되는데 이 오구풀이가 바로 바리공주가 불리는 것이다. 즉, 가장 먼저 무당의 기원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서사무가도 그러하지만 바리공주 설화, 혹은 신화도 불교의 영향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어느 부분이 우리 민족 고유의 서사무가인지, 불교의 이야기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한 예로 바리공주는 서천서역국에 가서 불로장생약을 구해온다. 저승이 바로 서천서역국인데 서역국이란 바로 인도이며, 불교의 발상지인것이다. 또 불교의 서방정토를 뜻하기도 한다. 서방정토란 극락, 저승이기도 한것이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물론 아래의 기본 이야기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지역에 따라 세부에는 차이가 있다. 무당은 바리공주 서사무가는 진오기굿의 말미거리에서 장고를 세우고 방울을 흔들며 서너 시간에 걸쳐 구송한다. 전국 모든 무당이 바리공주를 조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바리공주 무가가 전해져 오지 않는 곳에서는 미륵을 조상이라 하기도 한다.
왕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전남지역에서는 오구시왕이다. 오구는 원한맺힌 귀신이라는 뜻이며 시왕은 불교의 열명의 판관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왕에게 판결을 받아 어디로 갈것인지 결정이 된다. 이러한 점을 보아도 우리 서사무가에 드리워진 불교의 영향을 알 수 있다.
[편집] 줄거리
설화에 따르면, 옛 한국의 어느 왕이 있었는데 혼례를 일년 미루어야 아들을 낳고, 길하다는 예언을 무시하고 결혼한 탓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딸만 계속 낳다가 마침내 일곱째도 딸로 태어나자 버렸다. 바리공주가 태어나자 왕이 공주를 버려,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양육되었다. 후에 왕과 왕비가 죽을 병이 들어 점을 쳐 보니 저승의 생명수로만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섯 공주 모두가 부모를 위해 저승에 가길 거부했는데 바리공주가 이를 알게 되어,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가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저승에 가 약이 있는 곳까지 갔는데, 저승의 수문장이 바리공주와 일곱 해를 살고 일곱 아들을 낳아야 약을 주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그 조건을 채운 뒤 수문장과 일곱 아들과 함께 약을 갖고 이승에 돌아오는데, 궁에서 나오는 왕과 왕비의 상여와 마주쳐, 가져온 영약으로 되살렸다.
왕이 바리공주에게 물어 바리공주의 남편이 된 저승의 수문장은 장승이, 일곱 아들은 칠원성군이 되었고 바리공주는 이러한 연유로 왕에게 자청하여 한국 무당의 조상이 되었다.
[편집] 참고 도서
-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2,3 민속원 간 홍태한, 이경엽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