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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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소(閔泳韶, 1852년~1917년)는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다. 민철호(閔哲鎬)의 아들이나 민규호에게 입적되었다.
1878년 과거에 합격한 뒤 여흥 민씨 집권당의 일족이었기에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특히 호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맡으며 정변을 무난히 극복한 공을 인정 받았고, 대표적인 민씨 세력으로서 임오군란 때는 목숨은 건졌으나 살고 있던 가옥이 파괴되는 일을 겪었다.
1894년 병조판서로 근무하면서 홍종우로 하여금 상하이에 피신해 있던 김옥균을 암살하도록 교사하였다.
1894년 5월 20일부터 5월 25일까지 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1] 1910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고, 매국 공채 5만 원을 사들였다.[2]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두 명단에는 민영소의 작위를 습작한 민충식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가 조사 발표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편집] 참고자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6년 12월). 〈민영소〉, 《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242~248쪽.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편집] 주석
- ↑ 한성판윤: 1891~1920 대. 서울六百年史. 서울특별시. 2008년 4월 22일에 읽어봄.
- ↑ 김삼웅 (1995년 7월 1일). 《친일정치100년사》. 서울: 동풍, 86쪽. ISBN 978898607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