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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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규(閔泳奎, 1846년 12월 12일~1922년 11월 18일)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여흥 민씨 집안에서 민경호(閔璟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5년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판서 벼슬을 두루 거쳤다.
갑오경장 이후에는 궁내부대신을 지냈으며, 1910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민영규의 작위는 손자인 민병삼이 1924년에 습작했다.
1960년 보도에 따르면 민영규와 그 가족은 일제 강점기 동안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부유하게 살았고, 손자가 대한민국 국군 해안경비대에서 군 복무 중 사망한 일이 있다.[1]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편집] 참고자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7년 12월). 〈민영규〉, 《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99~110쪽.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편집] 주석
- ↑ 연성숙 (1960년 3월). 日帝韓人貴族의 近況. 《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