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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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속(馬謖, 190년 ~ 228년)의 자는 유상(幼常)이다. 양양(襄陽) 의성 출신. 마량의 막내동생. 제갈량이 아꼈으나 유비는 죽을 때 언과기실(言過其實)이란 평(評)을 하였다. 관직은 참군(參軍)이었으며 사마의를 거짓소문으로 한 때 물러나게 한 적도 있어 공명의 사랑을 받는다. 그 뒤로는 가정(街亭)의 큰 싸움에서 군량의 중요한 보급로인 산을 맡아 보는 중책을 짊어지게 되는데, 마속은 소홀하여 산을 빼앗기고, 촉군은 후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제갈공명은 패전 지휘자 마속에 그 책임을 물어 결국 목을 치게 된다. 공명(孔明)이 눈물을 머금고 그를 참하는 모습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이 나왔다. 제갈량휘루참마속(諸葛亮揮淚斬馬謖)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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