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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 위키백과

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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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857년?~918년, 재위: 901년~918년)는 태봉의 초대 군주다. 그는 신라 헌안왕 또는 신라 경문왕이 후궁을 통해서 얻은 아들이다.[1]

목차

[편집] 출생과 어린 시절

그는 857년 음력 5월 5일 그의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날 때부터 이가 나 있었으며 그가 태어났을 때 그 지붕 위에 달빛처럼 보이는 하얀 빛이 아른거리며 긴 무지개처럼 위로 하늘까지 뻗쳐 있었다고 한다. 이에 일관은 왕에게 아이가 태어난 시기, 나면서부터 있던 이, 광염 모두가 국가에 이롭지 못한 아이를 뜻하는 것이라며, 아이를 그냥 놔두어선 안된다고 고하였다. 이에 왕은 군사들을 보내 궁예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명을 받들어 군사들은 곧바로 강보에 쌓인 궁예를 빼앗아 높은 누각에서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때 유모가 몰래 받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유모가 아기를 받을 때 잘못 받아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바람에 한쪽 눈이 멀게 되어 애꾸가 되고 말았다.

유모는 아기를 안고 그 길로 멀리 떠나 숨어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키웠다. 그러나 그가 10여세가 되자 유희하기를 마다하지 않아 유모는 "네가 나서 나라의 버림을 받은 것을 내가 차마 보지 못하여 남 모르게 길러 오늘에 이르렀는데, 너의 미친 행동이 이러하니 반드시 남들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는 다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느냐" 라고 하였다. 그러자 궁예는 "만일 그렇다면 내가 (멀리) 가서 어머니의 근심이 되지 않게 하겠소" 라며 스스로 송악(개성) 세달사(世達寺)에 가서 승려가 되어 '선종(善宗)'이라는 법명을 스스로 지어 불렀다. 그가 장성하여서는 승려의 계율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기상이 활달하여 담기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일찍이 재를 올리는 행렬에 나아가 따르고 있던 궁예에게 까마귀가 날아와 바릿대에 '왕(王)'자가 쓰여있는 상아 조각을 궁예한테 떨어뜨렸다고 한다. 이를 얻은 궁예는 큰 자부심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편집] 몸을 일으키다

이 시기 신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원종·애노의 난이 발발한 889년에는 그 쇠미가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될 정도였다. 그러자 궁예는 무리를 얻으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겨 891년 죽주의 도적들의 우두머리 기훤에게 의탁하였는데 매일 무시만 당하며 살았다. 이에 그는 비밀리에 기훤의 막하 장수인 신훤과 원회와 결탁,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어 892년에는 북원의 장군 양길에게 의탁을 하였는데 양길은 궁예의 자질을 알아보고 잘 대우해주어 일을 맡기고, 군을 나누어 주면서 동쪽을 공략하게끔 하였다. 궁예는 먼저 치악산 석남사에 주둔한 후, 출진하여 주천(원주), 내성(영월), 울오, 어진을 습격하여 항복받았다. 진군 방향은 명주였던 것 같다. 894년에는 마침내 명주로 들어갔으며, 군사는 3천 5백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를 14대로 나누어 금대검모흔장귀평장일[2]을 부장으로 삼았으며, 사졸들과 더불어 달고 쓴 것과 힘든 일과 편안한 일을 모두 함께 하였으며, 주고 뺏는데 있어서도 사사롭게 하지 않으니 대중이 그를 두려워하고 경애하여 장군으로 추대하였다 한다. 이어서 다시 강원내륙으로 군의 방향을 돌린 궁예군은 저족(인제), 생천(화천), 부약(김화), 금성(김화 금성), 철원을 격파해 나갔고, 이에 위협을 느낀 패서의 호족들이 속속 내투하였다. 궁예는 신라 북부의 패권을 장악했던 것이다.

[편집] 건국과 치세

건국 초기에는 영토를 계속 넓혀가고, 나중에 왕건을 보내 힘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편집] 고려 시기

이에 자신감을 얻은 궁예는 왕을 자칭하고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고려는 불교를 크게 내세웠으며 그의 즉위식에도 덕망높은 승려가 약 300여 명 함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칭한 것 역시 이때였으며 석가모니의 치세와 덕을 강등시키고 석가모니가 이륙하지 못한 평화통일과 천상으로 여는 길을 자신이 모두 하겠다는 발언까지 하였다. 왕륭과 왕건은 이때쯤 항복한 것 같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 연도는 896년이라 한다. 왕륭은 궁예에게 송악에 도읍을 쌓으라 권하였고, 왕건에게 발어참성을 쌓고 그 성주가 될 것을 명하였다. 송악 천도는 898년 2월의 일이었다. 이 시기동안 복속하지 않은 패서의 호족들을 토벌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898년 이후엔 토벌의 범주를 한강 유역으로까지 확대하였다. 한편 양길은 그대로 북원에서 국원 등 30여개 성을 거느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궁예가 강성해졌다고 하자 공격을 하려 하였다. 궁예는 그를 듣고 먼저 공격, 양길을 패퇴시켰다. 이후 양길의 잔여 세력은 900년에 왕건을 명하여 광주, 충주, 당성(화성시 남양), 청주, 괴양(괴산)에 이르는 지역을 토벌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복속된 것 같다. 901년에는 왕임을 선포하고 "옛날에 신라가 당(唐)에 청병(請兵)하여 고구려를 파(破)하였기 때문에 평양 옛 서울이 황폐하여 풀만 무성하니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리라"고 발언하였다 한다. 김부식은 궁예가 남쪽으로 순행을 가서 흥주(영주 순흥) 부석사의 한 전각 벽에 걸려있던 신라왕의 화상을 칼로 쳤다는 일화를 들어 신라에 대한 미움이 이 발언에 담겨 있다고 해석했으나, 그보다는 신라가 백제를 정복하였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던 견훤의 연설처럼 궁예가 기반으로 하는 패서 지역의 호족들과 왕권의 연계를 단단히 하고자 했던 발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편집] 마진 시기

904년 나라 이름을 마진(摩震)으로, 연호는 무태(武泰)에서 성책(聖冊)으로 고치고 이듬해 수도를 철원으로 옮겼다.

[편집] 태봉 시기

911년 다시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으로, 연호도 수덕만세(水德萬歲)라고 고쳤으며, 914년에 다시 정개(政開)라 고쳤다.

말년에는 백성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여 전쟁을 계속하고, 궁궐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 등 가혹한 수탈을 일삼았고, 신라를 '멸도(滅都)'라 낮추어 부르며 신라인들은 귀화인이라도 모조리 잡아 죽였다.

더불어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하여 전제 정치를 도모하였고 머리에 금책을 쓰고 몸에는 가사를 걸쳤다. 밖에 나가 행차할 때에는 늘 하얀 말을 탔는데, 비단으로 말머리와 꼬리를 장식하였고 소년과 소녀에게 깃발과 천개, 향, 꽃을 들고 앞에서 길을 인도하게 하고, 뒤에는 승려 200명을 동원하여 염불을 하도록 하였다. 맏아들 청광은 '청광보살'로, 둘째 아들 신광은 '신광보살'이라 부르게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관심법(觀心法)으로 능히 사람들의 마음 속을 알 수 있다. 만약 내 관심법을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곧 준법을 행하리라"는 말을 내세워 죄 없는 신하들과 왕후와 두 왕자들을 철퇴를 내리쳐 죽이는 등 포악한 공포정치를 일삼았다(915년). 또한 자술경(自述經)이라고 하여 직접 불경 20권을 지었는데 그 내용이 요망하여 하나같이 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것들이었다.

[편집] 최후

이에 따라 신하들과 백성들의 신망을 잃게 되자 918년 신숭겸, 홍유, 복지겸, 배현경 등이 모의하여 왕건을 새 임금으로 추대하고 궁예를 축출시켰다. 왕위를 빼앗기고 혁명군을 피해 도망가던 궁예는 부양에서 백성들에게 정체를 들켜 장살(杖殺)되었다.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명성산(鳴聲山)은 울음산이라고도 불리며, 궁예가 이 산에서 피살되었는 설이 전해진다. 또, 궁예의 죽음을 슬퍼하여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고 한다.

[편집] 평가

어떤 역사학자들은 그가 왕비와 두 왕자들을 죽인 것은 호족들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서 죽인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반신라 정책에 대해서도 분분한 설이 많다.

[편집] 주석

  1. 《삼국사기》권50 열전 제10 궁예편. 궁예에 관하여 가장 기본적인 사료로, 여기서 인용되는 문장은 특별한 표시가 없다면 이 곳에서 인용된 것이다.
  2. 어디서 끊어읽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정설이 없다.

[편집] 가계

  • 왕후 강씨(康氏) - 피살당함
    • 청광(靑光) - 피살당함
    • 신광(神光) - 피살당함
    • 순백(珣白) - 광산 이씨(光山 李氏) 시조인 종금(宗金)의 조상이다.

[편집] 참고


앞선 왕
초대 군주
제 1 대
901년 - 918년
다음 왕
(태조가 정변으로 빼앗음)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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