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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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姜宇奎, 1859년 4월 20일 ~ 1920년 11월 29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일우(日愚), 본관은 진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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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일생
평안북도 덕천에서 태어났으며, 함경남도로 이주하였다.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약방을 차렸다.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하여 조선의 독립을 의논했고 4년 후 랴오허 현으로 이사하여 독립운동을 모의하였다. 1917년 지린에 동광학교를 세워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가입해 있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노인단 지린 성 지부장이 되어 조선 총독 등을 암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해 러시아인으로부터 수류탄을 구입하고 허형과 함께 원산시를 거쳐서 서울로 잠입했다.
1919년 9월 2일 현재의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신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터졌지만 사이토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대신 일본인 경찰을 비롯한 수십명이 다쳤다.
강우규는 현장에서는 몸을 피했으나 도피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유명한 형사인 김태석에게 붙잡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편집] 사후
독립기념관에 어록비가 제작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당하기 직전에 유언으로 남긴 한시가 적혀 있다.[1].
단두대상에 홀로서니
춘풍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참고자료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강우규, 1999년
[편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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