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Knight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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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작업
고종 암약설 / 이어리가 / 유감동 / 유상 / 박어우동 / 선접꾼 / 원인손 / 투전 / 골패 / 쌍륙 / 조광일 / 백광현 / 이헌길 / 피재길 / 정래교
[편집] 관심을 두고 있는 항목
[편집] 위키 항목
[편집] 잡설
아래 내용은 오리지널 리서치에 해당할 수도 있다.
[편집] 광무“태황제”?
물론 조선의 고종은 “광무태황제”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 태황제는 황제의 자리를 선양하였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굳이 광무태황제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경우에는 광무태황제라는 호칭은 욕이 될 수도 있다. ㅡㅡ;;
[편집] 원칙과 허용 : 이 둘은 서로 다르다. 서로 같지 않다.
- 한글 맞춤법에 보면 제50항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 위의 내용은 언뜻 보면 “둘 다 옳다”라고 여겨지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분명 “원칙”이 옳고, “허용”은 (엄밀히 말하면 옳지 않지만) 그르지 않다는 뜻이다.
- 법률에서 불법과 위법이 있다. 분명 원칙은 합법이지만, 원칙에 기술하지 않거나 원칙에 어긋나는 사항을 불법이라고 하며, 불법 가운데 실제로 처벌하는 위반이 위법이다. 다시 말해 불법은 엄밀히 말해 옳지 않지만, 여러 이유로 처벌을 유예하거나 처벌을 면제하는 사항이다. 대부분 불법도 위법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불법 자체는 엄밀히 말해 위법이 아니며,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불법 행위자가 범죄자는 아니다.
- 법률에서 범죄자는, 불법 행위자가 아니라,
법률 위반자위법 행위자이다.
[편집] 한족이 쓰는 역사 vs. 오랑캐가 쓰는 역사
- 한족이 기록하는 역사는 절단된다. 예를 들면 원사는 아직 멸망하지도 않은 “원나라”를 강제로 멸망시켜 버린다. 원나라 360여 년 역사가 90여 년으로 줄어버린다. 그 뒤의 나라는 “북원”이라 칭하면서, 그 연속성을 부정한다. “촌철살인”이 아니라 “촌철폐국”이며, 역사 왜곡이다. 또한 한족에 불리한 기록은 꽤 삭제되고 변조된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한서나 후한서, 삼국지에 나타난 흉노 기록이다. 게다가 삼국지의 기록에서 한족과 비슷하면 우호적으로 기록하고, 다르면(유목 민족이면) 폄하하여 기록하고 있다.
- 오랑캐(?)가 남긴 기록인, 요사, 금사, 명사, 수서, 당서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논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사는 요뿐만 아니라 서요까지 다루며, 금사는 마지막 멸망과 여진의 반란(부흥 운동)까지, 명사는 명 멸망 후 정통성을 주장했던 남명까지 기록했다. 더구나 유교적이지 못한 부분도 실제 업적을 가려 공과를 따지고 있다(당 태종의 황위 찬탈과 치세의 업적을 모두 적었다). 혹자는 수서가 당나라 때 기록이라서 한족의 기록으로 보지만, 실제 기록자는 당나라 초기 지배층인 북방의 탁발족(당나라 황족의 외척)이다. 또한 탁발족은 수나라 황실의 외척이기도 하다(당 태종과 수 양제는 꽤 가까운 친척(6촌 이내)이다). 마찬가지로 당서의 기록자도 오대십국 시대의 북방 오랑캐이다.
- 한족이 기록하는 역사는 정돈되어 있으나, 주관적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거짓말이 많으니까 잘 숨겨야 한다.
- 오랑캐가 남긴 기록은 주관적인 서술이 적다. 무식해서(?) 한족이 남긴 기록대로 편찬했을 뿐이니까.
[편집] 실증하지 않은 실증학파의 이론 또는 반론
- 삼국사기에서 최치원이 마한이 고구려라 일렀고, 삼국유사에서 그것을 높이 평가(동의)하였으나, 실증사학자 이 모가 아무런 실증도 없이 부정하자, 마한백제설이 정설이자 통설이 되었다.
- 실증학파에서는 평양이 고조선의 도읍이라고 주장하는데, 아직까지 고조선을 무너뜨린 전한의 유물은 단 한 점도 발굴되지 않았다.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에서 최초의 전투는 임유관 전투이다. 임유관(臨楡關)은 오늘날 산하이관인데, 실증학파의 이론대로 그곳이 수나라 영토였다면, 고수전쟁(고구려-수나라 전쟁)은 고구려의 침략에 수나라가 반격함으로써 비롯됐다는 결론에 도달한다.이 내용은 내가 틀렸다.- 낙랑군의 통치자는, 그들의 “정상적인 해석”에 따르면, “낙랑 태수”가 아니라 “낙랑 왕”이다.
[편집] 오리지널 리서치(개인 생각)의 특수한 예
단순한 사료의 해석이나 제시는 오리지널 리서치이다. 이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료의 해석이나 제시에 대해 출처를 요구하는 것은 그러한 해석을 한 논문이나 서적을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태왕 비문처럼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편집] 외래어 사용에 대하여
일부 낱말(예를 들면 드래건)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편집] · : 가운뎃점의 사용
가운뎃점은 쉼표의 하나로서 열거된 여러 단위나 개체가 대등하거나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가운뎃점이 있는 곳을 쉼표로 바꾸면 대등하거나 밀접한 관계가 아닌 동치인 관계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 한·일 관계 = 한일 관계 ≠ 한,일 관계 : 앞의 둘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뜻이지만 마지막은 “한국은 곧 일본인 관계”라는 이상한 뜻이 된다. 다만 이때 쉼표의 용법을 가운뎃점과 똑같은 용법이라고 주장하여도 무방하지만, 그것이 100점짜리는 아니다.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틀리지는 않은 표기, 허용하는 표기)일 뿐이다.
- 그밖에 예
-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조약(Austria-Serbia條約) : 1881년에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가 맺은 비밀 조약.
서양 언어에서 붙임표가 가운뎃점 역할을 한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요즘 걱정
- Marduk-Apal-Iddina II : “마르두크아팔이디나 2세”가 옳을까? “마르두크 아팔 이디나 2세”가 옳을까? 원칙대로라면 “마르두크·아팔·이디나 2세”라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쓴 문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참고로 이 말은 ‘마르두크께서 나에게 상속자를 주셨다’라는 뜻이다.
- Merodach-Baladan : “Marduk-Apal-Iddina II”와 동일 인물이다. “메로다크 발라단”이라고 주로 쓰며, 나는 “메로다크발라단”이라고 써 왔다. 정확하게는 “메로다크·발라단”이 더 옳다.
우선 원칙대로 쓰고 나중에 고쳐야겠다.
- 예외
- Indo-European : 인도유럽 어족. 이밖에 모든 어족(語族)을 나타내는 말은 모두 가운뎃점 없이 쓰고 있다.
- Alsace-Lorraine : 알자스·로렌이라고 하지 않고 알자스-로렌이라고 한다.
[편집] 위키백과:중립적 시각
- 공식 명칭은 어떠한 경우에도 중립적 시각에 어긋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대일본제국,” 한국에서는 “일본제국” 들)
- 공식 명칭이 표제어로 반드시 쓰여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예컨대 서양의 왕/왕세자의 이름은 로마자로 100자 이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열 자 남짓으로 줄여서 쓴다. 영국의 웨일스 공 찰스 왕세자의 공식 명칭을 살펴 보라.
- 위와 같이 공식 명칭이 따로 있더라도 다른 말을 표제어로 삼을 수 있다.
- 같은 인물/사항이라도 쓰이는 곳에 따라 달리 부를 수 있다. 카롤루스 대 샤를마뉴 들.
- 토론에서 비유/비교를 할 때 (1) 하룻강아지와 호랑이의 비유/비교, (2) 호랑이와 사자를 비유/비교하는데 갑자기 곰과 비유/비교, 이런 비유/비교들은 하지 말라. 그것은 정당한 비유/비교가 아니다. 대개 그런 비유/비교가 나온 다음에는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거나 유리한 내용을 서술하곤 한다. 우리 모두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으므로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 토론에서 논점을 흐리지 말라. 중립적 시각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대개 그런 행위를 하는 때는 (1) 그 사람이 중립적 시각을 준수해 달라고 주장했거나, 반대로 (2) 중립적 시각에 어긋나는 형태로 의견을 개진했거나 하는 때이다.
[편집] 좋아하는 것
[편집] 판타지
[편집] 자아성찰
언제나 스스로를 돌이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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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학위 논문
[편집] 백과사전 및 일반 사전과 용어집
[편집] 일반 인터넷 문서
[편집] 인터넷 뉴스 기사
[편집] 실제로 나타나는 내용
- ↑ 1.0 1.1 이태진 (2000년 8월 30일). 《고종시대의 재조명》, 초판 2쇄, 서울: 태학사. ISBN 89-7626-546-7 04910.
- ↑ 강명관 (2004년 1월 5일). 《조선의 뒷골목 풍경》, 초판 12쇄, 서울: 푸른역사. ISBN 89-87787-74-5.
- ↑ 김삼웅 (2004년 7월 3일).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초판 2쇄, 서울: 인물과사상사. ISBN 89-88410-91-2 03900.
- ↑ 이덕일 (2003년 8월 25일). 《살아있는 한국사》, 초판 1쇄, 서울: 휴머니스트, 97~99쪽. ISBN 89-89899-58-3. ““《후한서》 옥저전의 다음 기록은 … 고구려 서북쪽으로 옮기고”(97쪽)”
- ↑ 한영우 (2001년 10월 20일).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초판 1쇄, 서울: 효형출판. ISBN 89-86361-57-4.
- ↑ 이덕일·이회근 (1999년 4월 20일).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초판 10쇄, 서울: 김영사, 160~168쪽. ISBN 89-349-0359-7.
- ↑ 김두봉 (1998년 2월 25일). 《조선왕조 기네스북》, 초판 2쇄, 서울: 씨앤드씨그룹, 34~35쪽.
- ↑ 김세환 (2004년 11월 20일). 《끝나지 않는 식민지 학문 100년》, 초판 1쇄, 서울: 도서출판 박이정. ISBN 89-7878-761-4.
- ↑ 발터 크래머, 괴츠 트랜클러 (2002년 9월 10일). 《상식의 오류 사전 I》, 박영구, 박정미 옮김, 초판 10쇄, 서울: 도서출판 경당, 210~213쪽. ISBN 89-86377-17-6.
- ↑ 이상태. 《한국 고지도 발달사》. 서울: 혜안, 185~242쪽.
- ↑ 김완섭. 《새 친일파를 위한 변명》. 서울: 춘추사. ISBN 8995280220.
- ↑ 신복룡 (2001년 12월 20일). 《한국사 새로 보기》, 초판 2쇄, 서울: 도서출판 풀빛. ISBN 89-7474-870-3.
- ↑ 국사 편찬 위원회, 국정 도서 편찬 위원회 (2004년 3월 1일). 《고등학교 국사》. 서울: (주)두산, 338~339쪽..
- ↑ 김한종, 홍순권, 김태웅, 이인석, 남궁원, 남정란 (2004년 3월 1일).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서울: 금성출판사, 84~89쪽.
- ↑ SUTASIONUE (1993년 9월 15일). 《소설 마크로스》, 이웅 번역, 서울: 예문각.
- ↑ 조희승 (1990년 5월 15일).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대한민국 출판본은 한국문화사에서 펴냄).
- ↑ 한계옥 (1998년 4월 10일). 〈‘국왕 생포 작전’과 왕비 학살〉, 《망언의 뿌리를 찾아서》, 조양욱, 1판 1쇄, 서울: (주)자유포럼, 89~92쪽. ISBN 89-87811-05-0.
- ↑ 주진오. 〈교과서의 독립협회 서술은 잘못되었다〉, 역사문제연구소 편: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역사 37장면 1》. 역사비평사, 31~40쪽. “그러나 그는 귀국 후 단 한 번도 자신을 이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고 필립 제이슨 또는 피제손으로 표기하였다”
- ↑ 신주백.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 역사문제연구소 편: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역사 37장면 2》. 역사비평사, 215~222쪽.
- ↑ 이규섭 (2003년 1월 29일). ■ 설의 유래와 세시풍속 - 그 때 그 시절의 설이 그립다. 《칼럼니스트》 제588호. 2008년 5월 8일에 읽어봄.
- ↑ 강정숙 (2005년 4월 29일). 일제 말기 조선인 군속 동원 ─오키나와로의 연행자를 중심으로─. 《사림》 제23호: 171~206쪽. ISSN 1229-9545.
- ↑ 정혜경 (2005년 9월 28일). 일제말기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에 관한 기록사료. 《사림》 제24호: 1~42쪽. ISSN 1229-9545.
- ↑ 이병례 (2005년 10월 9일). 일제하 전시체제기 경성부의 노동력 동원구조. 《사림》 제24호: 43~71쪽. ISSN 1229-9545.
- ↑ 김정동 (2001년 12월). "조선후기 곡가변동과 방곡령 ─함경도와 상주를 중심으로─". 안동대학교 행정경영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 박도형 (1997년 12월). "조선후기 곡물수출과 방곡령 ─상주지역을 중심으로─". 안동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논문.
- ↑ "Holy Roman Empire". Encyclopædia Britannica. (2007). 2007-05-18에 읽어봄.
- ↑ "聯裝砲". 엠파스 한자사전. (2007). SK Communications. (주)오픈마인드인포테인먼트. 2008-05-10에 읽어봄. “연장포(連裝砲). (군함(軍艦) 같은 데에서)한 포가(砲架)나 포탑(砲塔)에 2문(門) 이상(以上)의 포신을 장치(裝置)한 포. 해군포ㆍ고사포 따위”
- ↑ "피재길". Daum사전 - 문화원형 백과사전. 2008-06-17에 읽어봄.
- ↑ "상앙". 엔싸이버 백과사전. 2008-06-20에 읽어봄.
- ↑ 국립민속박물관 - 열두달 세시풍속 : 설날 (한글) (HTML). 2008년 5월 8일에 읽어봄.
- ↑ 정한론부터 야스쿠니 신사참배까지의 일본에 대한 한국의 시각 - 내용 미리보기 (한글) (HTML). 2008년 5월 10일에 읽어봄.
- ↑ 국립문화제연구소. 문화유산학술연구정보지식포털 : 민비 탄강 구리비 (한글) (HTML). 2008년 5월 29일에 읽어봄.
- ↑ 한강우. "설,일제 탄압...5공때야 ‘민속의 날’로" (HTML), 《문화일보》, 2005년 2월 7일. 2008년 5월 8일에 읽어봄. (한글)
- ↑ 김성한. "꼬리에 꼬리 무는 설 이야기" (HTML), 《국제신문》, 2007년 2월 15일. 2008년 5월 8일에 읽어봄.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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