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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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 지방은 가장 인구가 많은 스페인 자치 지방으로서 두 번째로 크기가 큰 자치 지방이기도 하다. 수도는 세비야이다.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지중해를 끼고 있다. 동쪽으로는 포르투갈과 대서양에 맞닿기도 한다. 지중해와도 만나며 지브롤터 해협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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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편집] 페니키아
타르테시안 인의 문명이 발견된 곳으로 로마 초기 시대에 해당한다. 페니키아인은 안달루시아 해안가의 상당 부분을 식민화하였으며 1100 BC 경 카티스 지방이 가장 주요한 식민 거점이었다.
[편집] 카르타고인과 로마인
페니키아 식민 도시의 몰락과 함께 카르타고가 지중해 서쪽 지방에 절대적인 해상 권력을 몰고 들어왔다. 주요 무역상대국으로 떠오르면서 해안가를 따라 셈 족 계통의 마을이 출현하게 되었다. 1, 2차 카르타고 전쟁 이후 카르타고는 안달루시아 전역과 스페인 전체로 그 영역을 확대하였다. 안달루시아는 로마와의 전쟁터가 되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무찌르면서 안달루시아도 로마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왔으며 베티카(Betica)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편집] 반달족과 서고트족
반달 족은 5세기 이후 북아프리카를 통해 이 지역에까지 세력을 떨쳤다. 멸망 이후 서고트족 왕국이 들어와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몰고 들어왔다.
[편집] 아랍과 무어 인
안달루시아의 문화는 반천년의 무슬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코르도바는 서유럽과 세계를 통틀어 당대 가장 크고 화려한 도시의 영화를 누렸다. 무어 인은 안달루시아에 대학을 설립하고 장학금 제도를 마련하는 한편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고의 문화적 업적을 이뤄내었다. 서구의 천문학과 약학, 철학, 수학에 있어서도 유대인과 무어 인의 연구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쳐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최고의 업적을 남겼다. 세비야를 비롯한 수많은 곳에 웅장한 건축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콜럼버스의 함대가 출전한 항구도 남아 있다.
[편집] 언어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거의 안달루시아 방언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카나리아 제도에서도 널리 쓰이며 세비야가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 주요 통로였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편집] 관광
스페인 남부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내륙 지방의 코로도바와 언덕가의 마을에는 아직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더러 있지만 해안 지방은 일년 내내 관광객으로 붐빈다.
수백 수천의 관광객이 모이면서 숙박비용이 나날이 오르고 있다. 지중해를 만끽하러 오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각지의 관광객이 모이는 탓에 케밥 음식점, 아일랜드식 바, 중국식 음식점도 흔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스페인의 맛과 문화를 보고 싶다면 내륙으로 가야 한다. 멀리 운전을 해서 가야 하지만 국립 공원이 나타나며 산 뒤에 숨겨진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다. 해안가만 관광의 전부가 아님을 안달루시아에서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편집] 기타
안달루시아의 날이 2월 28일에 치러진다. 성공적인 선거를 기리기 위한 날로서 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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