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만 (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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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핀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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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링거 가문 |
베르됭 조약(843) 이후 |
카를로만 (706년에서 716년 사이 – 754년)은 카를 마르텔의 맏아들로 741년 아버지가 죽자 동생 피핀과 함께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카를로만은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를, 피핀은 네우스트리아의 궁재가 되었다. 747년 그는 모든 지위에서 물러나 수도원으로 은퇴하였다.
741년 아버지 카를 마르텔이 죽었을 때 카를로만과 피핀에게는 배다른 동생 그리포가 있었다. 그리포는 아버지의 유산에 자신이 배제되자 반기를 들었고 742년 카를로만과 피핀은 그리포를 붙잡아 수도원에 감금시켜 버렸다. 두 형제는 서로 힘을 합쳐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고 자신들의 가문의 지위를 강화하는데 협력했다. 아키텐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카를로만이 피핀을 돕고 작센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피핀이 카를로만을 도왔다.
747년 8월 15일 카를로만은 자신의 모든 지위에서 물러나 로마에서 교황 자카리아에 의해 삭발을 하고 수도원으로 은퇴하였다. 그 후 그는 7년동안 이탈리아 몬테 카시노에서 수도원을 창설하고 그곳에 머물면서 일체 세속의 직위에 관여하지 않고 수도승으로 보냈다.
754년 교황 스테파노 3세는 롬바르드족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프랑크 왕이된 피핀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카를로만은 은둔처에서 나와 피핀에게 가서 이탈리아로 진군하지 말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피핀은 카를로만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를 비엔에 감금시켜 버렸다. 카를로만은 그해 8월 비엔에서 죽었고 유해는 몬테 카시노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