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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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崔時仲)은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었으며 정치인이다.
이명박 정부의 제1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다. 동아일보와 한국갤럽 등에서 언론 분야에서 40여년을 재직하였다.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정치적 멘토라는 평이 있다. 국회 인사 청문회의 의견서 불채택과 언론 단체에서 자격에 대한 많은 논란을 거쳤으나,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제1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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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약력
- 1937년 경북 영일군 출생
- 1953년 2월. 포항 구룡포중학교 졸업.
- 1957년 2월. 대구 대륜고등학교 졸업
- 1960년 8월. 육군 일병 귀휴
- 1963년 2월.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1964년 4월. 동양통신 기자
- 1965년 9월. 동아일보사 편집국 방송뉴스부 기자
- 1969년 3월. 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부 기자
- 1976년 10월. 동아일보사 편집국 국제부 기자
- 1979년 11월. 동아일보사 편집국 지방부 차장
- 1980년 12월. 동아일보사 안보통일문제조사연구소 상임연구위원
- 1985년 6월. 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담당 편집위원
- 1988년 3월. 동아일보사 정치부 부장
- 1988년 10월. 동아일보사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 1993년 2월. 동아일보사 편집국 부국장
- 1994년 6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
- 2007년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및 6인회의 멤버
- 2008년 1월. 제17대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자문위원)
- 2008년 3월. 제1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편집] 자격 논란
최시중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의원과 서울대학교 동기이며,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참모 그룹인 "6인회의"의 멤버이다. 월간 신동아는 2008년 4월 통권 583호의 Who’s Who 이명박 파워맨이라는 별책부록에서 최시중이 1992년 이명박의 정계 입문 시절부터 정치적 조언자이며, 대통령 당선이후에는 "물이 넘치려고 할 때 제방(堤防)이 돼주는 것이 내 임무”,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라고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하였다. [1]
대한민국 국회의 인사 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하였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임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직업 윤리와 도덕성, 중립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진 사퇴를 권고하였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 언론노조,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등의 언론 유관 단체들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반대하였다.
최시중은 자격논란 시비에 대한 2008년 3월 2일 기자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생을 걸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방송통신위원회를 편파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2]
[편집]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
2008년 5월 13일 방송통신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 6조2항에서 방송통신위원장의 "의무"로 규정된 국회 보고를 거부한 후 동 법 6조2항에서 "필요한 경우"로만 참석을 제한한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쇠고기 관련 정부의 홍보 기능 강화" 발언을 하였다. 이에 국회,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에서 방송통신위원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 지적되었다.
2008년 5월의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이 한국방송(KBS)의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는 언행으로 인한 방송통신위원장의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언론계 등에 파문이 일었다. [3]
[편집] 1997년 대선 여론 조사 결과 유출 의혹
한국방송(KBS)은 최시중이 1997년 12월 15일 주한 미 대사(보스워스)에게 대선 여론 조사 내용을 유출한 정황을 보도하였으며, 이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벌어진 실정법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편집] 주석
- ↑ 신동아 4월호 이명박 파워맨
- ↑ 머니투데이: 독립성 우려 말라
-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88026.html 한겨례신문: 최시중 "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정연주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