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기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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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기(柳載奇, 1905년 6월 19일 ~ 1949년 7월 14일)는 한국의 장로교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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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경상북도 영주 출신으로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숭실전문 재학 중 배민수와 교류했으며, 배민수에게서 조만식을 소개받아 기독교 기반의 농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숭실전문 졸업 후 평양신학교를 1934년에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다. 1935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경북의 여러 지역에서 목사로 근무했다. 유재기는 이미 1933년 《조선일보》에 교회 내 협동조합 설치에 대한 의견을 담은 〈협동조합론〉을 발표하는 등 교회를 기본 조직으로 삼는 농촌운동에 뜻을 두고 있었다.
칠곡군에서 협동조합을 설치하여 이같은 이론을 실천에 옮긴데 이어, 의성군에 목사로 부임한 뒤로는 교회 내 청년 조직을 키워 애국계몽운동의 추진력으로 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38년 농우회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재기는 주모자로 체포되었다.[1] 결국 이듬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옥고를 마치고 풀려난 뒤에는 일제에 협조한 행적이 있다. 1941년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최지화가 제30회 총회장으로 피선되었을 때 경북노회장이 되었다.[2] 이 기간 동안 장로교단은 전투기 '조선장로교도애국기' 헌납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거나 신토 사원인 부여신궁 건설에 목회자들이 직접 참가해 근로 봉사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전쟁에 협력했다. 이때 유재기는 대구제일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경북 지역 장로교단의 전시보국 활동을 지휘했다.[3]
농우회 사건으로 복역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그러나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개신교 부문에도 포함되어 있다.
[편집] 같이 보기
- 농우회 사건
- 대구제일교회
[편집] 참고자료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 유재기
- 김수진 (2005년 9월 20일). 〈제30회 총회장 최지화 목사 (1941-1942년)〉, 《총회를 섬겨온 일꾼들》.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ISBN 8939806433.
[편집] 주석
- ↑ 신세원. "(251) 문소재에서-농우회 사건", 《기독신문》, 2007년 8월 16일. 2008년 5월 28일에 읽어봄.
-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587~591쪽. ISBN 8995330724.
- ↑ 최덕성 (2006년 3월 30일).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서울: 지식산업사, 293쪽. ISBN 9788951108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