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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사사
이름 |
저자 |
시대 |
권수 |
사기 |
사마천 |
전한 |
130 |
한서 |
반고 |
후한 |
100 |
후한서 |
범엽 |
유송 |
120 |
삼국지 |
진수 |
서진 |
65 |
진서(晋書) |
방현령 등 |
당 |
130 |
송서 |
심약 |
양 |
100 |
남제서 |
소자현 |
양 |
59 |
양서 |
요사렴 |
당 |
56 |
진서(陳書) |
요사렴 |
당 |
36 |
위서 |
위수 |
북제 |
114 |
북제서 |
이백약 |
당 |
50 |
주서 |
영호덕분 등 |
당 |
50 |
수서 |
위징 등 |
당 |
85 |
남사 |
이연수 |
당 |
80 |
북사 |
이연수 |
당 |
100 |
구당서 |
유구 |
후진 |
200 |
신당서 |
구양수 등 |
송 |
225 |
구오대사 |
설거정 |
송 |
150 |
신오대사 |
구양수 |
송 |
74 |
송사 |
타그타 등 |
원 |
496 |
요사 |
타그타 등 |
원 |
116 |
금사 |
타그타 등 |
원 |
135 |
원사 |
송렴 등 |
명 |
210 |
명사 |
장정옥 등 |
청 |
332 |
신원사* |
커샤오민 등 |
중화민국 |
257 |
청사고* |
자오얼쑨 등 |
중화민국 |
536 |
《삼국지》(三國志)는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이다. 후한의 운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189년부터 진나라의 사마염이 천하를 통일하는 280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본기 4권, 열전 26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지는 원래 위지, 촉지, 오지라는 표제로 구성되었는데, 송나라 이후 위서, 촉서, 오서라는 표제를 더 많이 사용해왔다.) 삼국지는 '사기(史記)', '한서(漢書)'의 체계를 따라 인물전기 위주로 짜여 졌으나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연표를 담은 표(表)나 당시의 경제·문화를 기록한 지(志 혹은 書)가 없다.
삼국지는 위나라(魏)를 정통 왕조로 보고 쓰여진 역사서이다. 진수는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과 '오'의 황제는 열전에 편입시켰다. 제호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와 유선은 각각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이거나 심지어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이러한 체계는 진수가 벼슬을 하던 진나라가 위(魏)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를 비정통으로 본 데에 따른 것이다. 진수의 이러한 사관(史觀)은 훗날 습착치(習鑿齒)의 '한진춘추(漢晉春秋)'나 주희(朱憙)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촉을 정통으로 보면서 논쟁을 불러 오게 되었다.(조위/촉한정통론에 대해서는 정통론을 참조하라.)
삼국지는 서술이 간결하고 분명하여 명저라 일컬어져 왔다. 또한 위서 동이전(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왜인 등의 동양 민족 고대사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혼란 때문에 사료의 수집이 어려워 많은 사료를 참고하지 못하였다. 진수가 주로 참고한 사료는 왕심(王沈)의 '위서(魏書)', 위소(韋昭)의 '오서(吳書)', 어환(魚豢)의 '위략(魏略)'으로 알려져 있다.
진수가 참고한 자료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5세기 남북조시대 송의 문제가 배송지에게 명하여 여러 책을 수집하여 주를 달게 하였다. 본래 주는 본문의 말뜻을 주해하는 것이나 배송지는 누락된 사료를 기록하는데 힘을 기울여 수많은 자료를 인용하여 사실을 보충하고 고증하였으며 본문의 몇 가지 오류나 모순을 지적하고 시정하였다. 자신이 인용한 자료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진수의 인물평과 함께 자기 자신의 평을 넣기도 하였다. 현재 전해지지 않는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였기 때문에 그의 주는 사료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삼국지와 더불어 삼국지 평화, 삼국지 연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배송지주의 양과 관련하여 20세기 양익양이 삼국지의 글자수에 대해 정문이 20만자, 주(註)가 54만자로 주가 세 배에 가깝다고 하여 삼국지의 주가 정문을 그 양에 있어 압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왕정흡과 오금화가 정확히 글자를 세어 본 결과 정문(본문)의 글자수가 약 36만 8천자 주의 글자수가 약32만 2천자로 본문의 글자가 약간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위서는 본문이 약 20만 7천자 주가 약 21만 5천자, 촉서는 본문이 약 5만 7천자 주가 약 4만 2천자, 오서는 본문이 약 10만 3천자 주가 약 6만 5천자이다.
삼국지의 참고서로는 청의 전대소(錢大昭)가 엮은 '삼국지변의(三國志辨疑)', 양장거(梁章鉅)의 '삼국지방증(三國志旁證)', 항세준(杭世駿)의 '삼국지보주(三國志補注)'등이 저명하며 최근의 것으로는 고적출판사에서 1957년 출판한 노필(盧弼)의 '삼국지집해(三國志集解)'와 1991년에 호남사범대학출판사에서 퍼낸 소연뢰(蘇淵雷) 주편의 '삼국지금주금역(三國志今注今譯)'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원중 교수가 1994년 완역했다. 정사 본문은 완역되었으나, 배송지주의 상당 내용은 실리지 않았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목차
위서(魏書) |
- 卷1 魏書一 무제기
- 卷2 魏書二 문제기
- 卷3 魏書三 명제기
- 卷4 魏書四 삼소제기
- 卷5 魏書五 후비전
- 卷6 魏書六 동이원유전
- 卷7 魏書七 여포장홍전
- 卷8 魏書八 이공손도사장전
- 卷9 魏書九 제하후조전
- 卷10 魏書十 순욱순유가후전
- 卷11 魏書十一 원장양국전왕병관전
- 卷12 魏書十二 최모서하형사마전
- 卷13 魏書十三 종요화흠왕랑전
- 卷14 魏書十四 정곽동유장유전
- 卷15 魏書十五 유사마양장온가전
- 卷16 魏書十六 임소두정창전
- 卷17 魏書十七 장악우장서전
- 卷18 魏書十八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
- 卷19 魏書十九 임성진소왕전
- 卷20 魏書二十 무문세왕공전
- 卷21 魏書二十一 왕위이유부전
- 卷22 魏書二十二 환이진서위노전
- 卷23 魏書二十三 화상양두조배전
- 卷24 魏書二十四 한최고손왕전
- 卷25 魏書二十五 신비양부고당륭전
- 卷26 魏書二十六 만전견곽전
- 卷27 魏書二十七 서호이왕전
- 卷28 魏書二十八 왕관구제갈등종전
- 卷29 魏書二十九 방기전
- 卷30 魏書三十 오환선비동이전
|
촉서(蜀書) |
- 卷31 蜀書一 유이목전
- 卷32 蜀書二 선주전
- 卷33 蜀書三 후주전
- 卷34 蜀書四 이주비자전
- 卷35 蜀書五 제갈량전
- 卷36 蜀書六 관장마황조전
- 卷37 蜀書七 방통법정전
- 卷38 蜀書八 허미손간이진전
- 卷39 蜀書九 동유마진동여전
- 卷40 蜀書十 유팽요이유위양전
- 卷41 蜀書十一 곽왕향장양비전
- 卷42 蜀書十二 두주두허맹내윤이초극전
- 卷43 蜀書十三 황이여마왕장전
- 卷44 蜀書十四 장완비의강유전
- 卷45 蜀書十五 등장종양전
|
오서(吳書) |
- 卷46 吳書一 손파로토역전
- 卷47 吳書二 오주전
- 卷48 吳書三 삼사주전
- 卷49 吳書四 유요태사자사섭전
- 卷50 吳書五 비빈전
- 卷51 吳書六 종실전
- 卷52 吳書七 장고제갈보전
- 卷53 吳書八 장엄정감설전
- 卷54 吳書九 주유노숙여몽전
- 卷55 吳書十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
- 卷56 吳書十一 주치주연여범주환전
- 卷57 吳書十二 우육장낙육오주전
- 卷58 吳書十三 육손전
- 卷59 吳書十四 오주오자전
- 卷60 吳書十五 하전여주종리전
- 卷61 吳書十六 반준육개전
- 卷62 吳書十七 시의호종전
- 卷63 吳書十八 오범유돈조달전
- 卷64 吳書十九 제갈등이손복양전
- 卷65 吳書二十 왕누하위화전
|
위의 목차는 송나라 이후에 보편화된 삼국지 목록 체계에 따른 것이다.
[편집] 주석